'세상은 요지경'을 통해서 본 헬조선 음악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노래를 아는가? 안다면 당신은 아재. 신신애라는 배우이자 가수가 부른 뽕삘 가득한 이 노래는 90년대 초반 대한민국을 강타한다. 주문을 외는 듯한 가사와 호흡의 강약과 강세의 조화가 매력적인 이 곡. 게다가 퍼포먼스도 상당했다. 무표정으로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이판사판춤'을 추며 대한민국 막춤의 신기원을 열었달까? 노래를 불렀던 신신애는 이 곡을 통해서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신애? ㄴㄴ







서신애? ㄴㄴ








신신애! ㅇㅇ




그녀의 모습은 가요톱텐이나 여타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주 봤던 걸로 기억된다. 꼬꼬마 시절 듣게 된 이 노래는 재미있는 멜로디와 특이한 가사로 아직 나에게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요즘도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요상한 일이 있을 때마다 가끔 이 노래를 흥얼거리곤 한다.

그러던 중 오늘 어떤 신문기사를 보고 이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문득 이 곡의 가사를 곱씹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세상은 요지경의 가사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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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산다

야이야이 야들아 내 말 좀 들어라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
인생살면 칠팔십년 화살 같이 속히 간다
정신 차려라 요지경에 빠진다

싱글 벙글 싱글 벙글 도련님 세상
방실 방실 방실 방실 아가씨 세상
영감 상투 삐뚤어지고
할멈신발 도망갔네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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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각 가사들이 요즘 한창 아도치고 있는.. 박대통령까지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헬조선'의 무엇과 닮아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세상을 요지경이라는 장난감에 비유하면서 온갖 군상들과 삶의 다양한 모습들을 요지경 속 그림들이 굴러가며 변해가는 모습인 것처럼 노래한다. 적절하다. 세상은 요지경. 제목부터 펀치라인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다음 대목이다.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산다

무엇이 떠오르는가? 나는 금수저와 흙수저가 먼저 떠올랐다. 부모 덕분에 노력없이 승승장구하는 재벌이나 졸부의 2세들은 금수저를 입에 문 잘난 사람, 아무리 노오오오오력을 해도 절대 시궁창을 벗어날 수 없는 흙수저를 입에 문 못난 사람. 즉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산다'는 건 계층간 이동이 어렵다는 말. 즉 개천에서 용 나긴 글렀다는 말이다. 과거에는 공부를 열심히 하면 뭐든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어릴 때부터 받는 교육의 질과 양부터 차이가 나고, 결국 이것은 더 심한 계층간 차이를 만들어 낸다. 이것보다 헬조선을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이 어디 있는가? 작사가의 통찰에 다시 한 번 부랄을 탁 치게 된다. 아얏!

야이야이 야들아 내 말 좀 들어라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

캬! 이보다 더 계몽적인 가사는 찾아볼 수가 없다. '야이야이'라고 호기심을 생기게 한 후 '야들아'라며 친숙하게 이목을 집중 시킨 다음 '내 말 좀 들어'보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하라고 재차 강조한다. 그리고 던져주는 메세지는 엄청나게 강력하다. 여기서 말하는 '짜가'는 가짜를 의미한다. -예전부터 속어로 쓰였던 말이긴 하지만- '가짜'의 음절 앞뒤를 뒤바꿔주면서 단어의 메세지에 생명력을 더했다. 가짜, 구라, 짝퉁. 이런 비양심이 세상에 판을 치고 있다는 얘기이다. 이런 비양심은 헬조선에서 서민의 삶 구석구석까지 침범해 있다. 먹는 것만 살펴봐도 답이 나온다. 원산지 허위 기재, 고깃집 및 주유소 정량 미제공, 과자 대신 질소 및 종이갑 판매 등.. 인터넷에 '짝퉁'이라고 검색만 해도 엄청나게 많은 기사들이 검색된다. 이런 짝퉁이 워낙 많다 보니 진퉁을 맞이하게 되면 뭔가 횡재한 기분이 드는 건 내가 헬조선에 살기 때문이겠지. 암튼 그때나 지금이나 여기저기 짜가가 판치고 있다.

인생살면 칠팔십년 화살 같이 속히 간다
정신 차려라 요지경에 빠진다

백세 인생이라는 노래가 아도쳤던 시점에서 인생을 칠팔십년 산다고 한 건 적합한 표현은 아닐 수 있지만, 백세 인생 중에 칠팔십년 정도는 빨리 간다고 해석할 경우 전혀 틀린 소리가 아니다. 고달팠던 학창시절은 더럽게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만 성년이 된 이후에는 시간이 정말 속히 간다. 나이가 들면서 더욱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추측해보건대 나이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아무래도 늙어가면서 기억력도 쇠퇴해가고 집중력도 떨어지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하루의 기억이 점점 짧아지는 것.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더 빨리 간다고 느끼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뒤이어 나오는 가사가 예술이다. 정신 차리란다. 요지경에 빠질 수 있으니까. 일침이다. 넋놓고 있다가 생각도 없이 시류에 휩쓸리게 될 수 있다는 내용인 것이다.

싱글 벙글 싱글 벙글 도련님 세상
방실 방실 방실 방실 아가씨 세상
영감 상투 삐뚤어지고
할멈신발 도망갔네 허~

처음에 이 가사를 봤을 때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하지만 웹 검색을 하니 원곡인 '앵화폭풍'이라는 노래의 가사를 인용했음이 확인된다.

'낮에도 사꾸라 밤에도 사꾸라
창경원 사꾸라가 막 피어났네
혼 나간 범나비 너울너울 너울너울
얼씨구 좋다 응 꽃 시절일세 헤헤이
영감 상투는 삐뚤어지고
마누라 신발은 도망을 쳤네
영감 마누라 꼴 좀 보소
어헐싸 흥 꽃이로구나
싱긋벙긋 껄껄 웃는 꽃이로구나

 -가요 ‘앵화폭풍’ 일부

이 앵화폭풍과 관련해서는 영남대학교 이동순 명예교수의 글이 있으니 참고하면 된다.


중요한 건 해당 노래가 억압받던 사회적 환경 속의 무질서 게다가 참담한 현실을 보여준 풍자가 가득한 노래라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허울만 좋아 보이는 겉치레에 휩쓸리고, 어른으로써 사회적 역할이 기대되는 노인과 기성세대들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기분에 취해 같이 여기저기 휩쓸리고 망가지는 모습 말이다.

지금 젊은이들은 개같은 사회 시스템에 갇혀 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고, 누군가가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라고 권하지도 않는다. 오직 돈만을 벌기 위해 취업, 더 정확히는 '기업 입사'라는 열매를 따내기 위해 스펙 쌓기에 열중하고 있다. 결국 취업에 성공하여 기업에 입사하면 월급을 받으며 번지르르한 삶을 살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를 까보면 평생 빚이나 갚는 노예일 뿐(나처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노인과 기성세대는 어떠한가? 젊은이들이 나약하다고 꾸짖고만 있다. 어른으로 사회의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행동해야 하지만 오히려 갈등의 당사자이거나 문제의 원인이 되곤 한다.





헬조선. 이 말이 왜 나왔을까? 사람들은 왜 헬조선이라고 외치고 있을까? 신조어가 나오면 그 신조어의 탄생 배경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히 헬조선이라는 사회시스템에 대한 부정적 표현일 경우에는 더욱 그럴 것이다. 헬조선이 예전에 아도쳤던 '캡'이라거나 '헐퀴'라는 단순한 의미를 담는 게 아니지 않는가. 꿈꾸는 것은 사치이자,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 헬조선. 정의가 사라지면서 비겁해야 잘살고 정직하면 그지깽깽이가 되는 헬조선.




헬조선맛이 나서 헬조선 맛이 난다고 하였는데..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삶의 터전에 자부심을 가져도 모자랄 지경이지만 이곳을 지옥이라 희화하고 혹은 냉소하며.. 떠나지 못하니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다. 헬조선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오직 정신승리를 하는 것. 희망을 기대하기 어려우니 스스로에게 책임을 지우고 자위하면서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지내는 것. 하지만 정말 행복할까? 그렇지 않다면 왜 모두 이렇게 불행한걸까?


세상은 요지경. 시궁창같은 헬조선에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노래가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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