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대학교 2학년 때였을 것이다.
친구 집에서 아침까지 질펀하게 술을 마시고 쳐 자다가 일어나니 버스 막차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난 재빨리 짐을 챙겨 친구 집에서 나왔다.
속에서 술 냄새가 올라왔다.
씻지도 않고 곧바로 나와서 그런지 머리카락에는 담배냄새가 베어 앉았고
몸에는 홀아비냄새가 찌들어 있었다.
얼른 집에 도착해서 씻고 좀 더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버스 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버스 정류장에 멍하니 앉아 있는데
2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서류가방을 한 팔에 낀 채 다가오더니 나를 힐끗 쳐다봤다.
그리고는 킁킁 거리는 듯 하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버스 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난 '그 눈빛은 뭔가염? 내가 더럽나연?'이라며 그녈 야려보았다.
내 야림이 느껴졌는지 다시 날 향해 힐끗 쳐다보더니
썩소와 함께 고개를 돌리고는 버스 오는 방향만 줄창 쳐다봤다.
버스가 도착했고 우린 버스에 올랐다.
난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았고 그녀는 내리는문 바로 오른쪽에 앉았다.
그날따라 버스에는 승객이 별로 없었다.
몇몇의 승객들만 승하차 할 뿐
버스기사 아저씨, 20대 중반쯤 보이는 여자, 나 그리고 외로운 라디오 DJ만 버스를 지켰다.
버스가 10분정도 달렸나?
아랫배가 슬슬 아파오더니
갑자기 꾸루룩꾸루룩 부글부글 거리기 시작했다.
직감했다.
그래!!
이건 술똥이얏!!
으으. 큰일이다.
그 참기 힘들다는 술똥!!
항문에서는 똥이 세상과 관심일촌 맺고 싶어서 내 괄약근을 허벌나게 노크하고 있는 것이었다.
으흡!
나지막하게 신음이 흘러 나왔고, 난 신음와 함께 배를 잡고 고개를 푹 숙였다.
내가 좀 많이 뒤척였나?
함께 버스 탔던 여자가 고개를 돌리려다가 만다.
자세를 고쳐 바르게 앉고, 다리를 꼬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전쟁과 평화가 반복되는 상황이 뒤이어졌고, 전쟁이 다가올 때마다 내 몸은 닭살이 전신을 휘감았다.
이 전쟁은 버스에서 절대 종전이 될 수 없었다.
버스가 집 부근 정류장에 도착했을 땐 관자놀이에 이미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내리는 문 쪽으로 이동하려는데 함께 탔던 여자가 낼롬 일어나서 대신 벨을 눌러주었다.
'나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것일까?'라고 그 고통 속에서 잠깐 생각이 들었으나
단지 같은 정류장에서 내리는 것일 뿐이었다.
그녀가 내렸고, 뒤를 이어 나도 내렸다.
그녀가 종종 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목적지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가는 방향이 같았다.
난 '전쟁 시 정지, 평화 시 속보'를 반복하며 집을 향해서 걸었다.
어두운 골목길에는 그녀와 나의 발걸음만 또각또각 거렸고,
종종 터지는 나의 안타까운 신음만이 또각거리는 발걸음 소리에 더해졌다.
그녀가 기분 나쁜 듯 뒤를 힐끗 돌아보더니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아놔, 똥마려운 거 티 많이 나는갑네'라는 생각이 들자 급민망 ㅠ
더구나 '왼발에 뿡' 스킬을 사용하면서 걷고 있었기 때문에 더더욱 민망스러워졌다.
쪽팔린 내 모습을 더 이상 보이고 싶지 않기도 하고
얼른 집에 가서 볼일을 보고 싶은 생각에 나 역시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가다보면 길이 갈릴 줄 알았는데 그녀와 나는 아파트 입구까지 함께 걸었다.
빠른 걸음으로.
우리의 차이는 좀처럼 벌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뒤를 돌아보는 횟수가 더 많아졌고 발걸음도 더 빨라졌다.
난 그녀가 쳐다보면 쳐다볼수록 더욱 쪽팔렸다.
‘혹시라도 왼발 딛는 소리와 뿡 소리가 엇박이 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자
그녀를 쳐다볼 수도 없을 정도가 되었다.
다행히도 아파트에 도착하자 내 배는 약간의 휴전협정을 청했다.
ㄳㄳ.
우리 집은 3층.
기회다 싶어서 냅다 달렸다.
어라?
그녀도 달린다!
뭥미?
그녀가 내가 사는 동으로 뛰어 들어가더니 계단을 타고 오른다.
나 역시 그녀를 따라 내가 사는 동으로 뛰어 들어가서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뛰어 오르며 난 열쇠를 꺼냈다.
최대한 빨리 볼일을 보고 싶었기 때문에.
계단에는 바쁜 발자국 소리와 찰랑거리는 경박한 열쇠소리로 가득찼다.
그녀는 목적지인 3**호 앞에 도착하더니
날 쳐다보며 다급하게 벨을 눌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초당 30번 씩 눌렀던 것 같다.
“OO어머니!! 저예요!! 어머니!! 문 좀 열어주세요, 어머니!! 어머니!!”
학습지교사였나?
난 그녀가 날 쳐다보던 말던 빠르게 그녀를 지나쳐
바로 옆 호인 우리 집으로 최단 시간 문따고 들어가 화장실 변기에 안착했다.
우르릉 쾅쾅!
급한 불을 끄고 나니 옆 집 벨을 신들린 듯 다급하게 누르던 그녀가 생각났다.
그때 깨달았다.
아,
내가 치한으로 보였나보구나.
오해당해서 기분 나쁘기도 했지만
늦은 밤 내 신음소리와 찌질함에 식겁했을 그녀를 생각하니
속으로 이런 말을 외치게 되더라.
"나는 나는.... 정말 나쁜 사람이다!!!"
음..
죄송할 땐..

현지타임
덧글
이거 웃어도 되는거죠?ㅠㅠㅠ 웃어도 되는건거죠ㅠㅠㅠ??(...)
우왕 나의 슈3花님은 이렇지 않아~
난 똥도 안싸는 사람인줄 알았는데..
이런 나도 막장인가...ㅇ<-<
술똥이 급한 상황에서 그런거 생각해서 배려해줄순 없죠!!
그나저나 여성분도 엄청 뻘쭘하셨을듯
크레멘테 // 아핫! 즐겁게 봐주시면 감사하죠 ^^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피해망상 // 참을 수 없죠. 막 치고 나오려 함!!
PERIDOT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음엔 오바이트와 관련된 이야기를..
희진 // 이해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ㅠ 급했던 그 당시엔 잘 몰랐는데 볼 일 다 보고 나니 그 분께 좀 죄송하더라구요. 낼롬 똥싸러 들어가는 제 모습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셨을런지요. ㅎ
이런경우 본의아니게 뒤쫓아가던 아가씨가 이쁘면 죄책감이 들다가도
반대의 경우에는 정말 정중하게 이야기해주고 싶더라고여-_-;;
'저.. 집에 가는 길입니다'
사람해요 // ㅠㅠㅠㅠ진짜 저 뭥미ㅠㅠㅠ
비공개 // 역시 알고 계셨군요 ㅎ 이어지는 알찬 정보 감사드립니다 ^^ 그럼 우리 늦기 전에 보러가염!!
....라는건 저만의 생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충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는 일이었군요. 그럴땐 거리를 벌리거나 앞지르는게 좋지만...그여자분이 슈사마님이 배아파 그런줄 알았겠습니까? ㅋㅋㅋㅋㅋ
중간쯤 읽을 때...버스에서 볼일 보실줄 알고 은근 기대했는데...=ㅂ= 아쉽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남일 같지가 않습니다...ㅠㅠ
감동적이에요...ㅠㅠ
어머니!!!문좀열어주세요!!! ㅠ_ㅠ
며칠전에도 다른 데서 앞서 가던 여자분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면서 "뒤에서 뭔 시커먼게 쫓아와!!" 해서 억울하셧다는 한 남자분의 글을 읽었었어요 ㅋㅋㅋㅋㅋ
저도 쵸죠비님처럼 중간에서 일 터진 걸로 기대했는데...쫌 아쉬워요!! ㅋㅋㅋ
슈사마님의 기분나쁜 심정도 이해하지만 그 여자분도 이해가 되네요. 솔직히 얼굴이 무기인 저도 밤길에 낯모르는 남성분과 단둘이만 계속 같은 방향으로 걷다 보면 괜히 무섭거든요.
낭만여객 // 절 오해하셨단 말입니다 ㅠ
쵸죠비 // 그 고통을 공감하신다니 왠지 더욱 가까워진 기분? ㅎ 그 여자분.. 저의 신음소리를 에로틱하게 받아들이실줄이야 ㅠ 아니, 쵸죠비님! 제가 버스에서 사고를 치길 바라신겁니콰!!! ㅎㄷㄷ
호갱 // 무사히 집에서 볼 일을 봤다는게 너무나 감동적이었어요.
hyangii // 상콤하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긴박함을 담아내려고 했는데 역시 전 어쩔수 없나봐염 ㅠ
JOY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뒤에 뭔 시커먼게 쫓아와 ㅋㅋㅋㅋ 아아 그 남자분 졸지에 '시커먼게' 되셨나보네요 ㅠ
dARTH jADE // 벨을 다급하게 누르던 그녀!!
비공개 // 오오 상당히 흥미로운 소식이네요. 3월1일 이후에 해명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 역시 그 이후를 선택했네요 ㅋ 알려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
티라미수 // '흡! 스으으으으~' 이정도의 신음이었사와요. 속으로 삭히는 신음이었사와요. 전 억울하옵니다 ㅠ 아쉬우시다니욧! ㅠ
나상 // 막 비집고 나올 뻔.. 아, 제가 너무 적나라하게..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sesism // 나중에 친구들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하니까 '왜 겁주냐'라면서 제 탓만 ㅠ 입장 바꿔서 생각해보면.. 어휴~ 이게 술 때문입니다 ㅠ
ㅋㅋㅋㅋㅋ
공감도 되고 ㅋㅋ
퍼가도 되죠?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