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덕후를 만났다. 놀라웠다. 나와는 조금은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 같았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자기의 영역에 침범하지 말라는 느낌을 받았다. 난 그와 소통하기 위하여 그가 가지고 있는 물건에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갔는데 그는 내가 그 물건을 망가뜨릴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정색하면서 그 물건을 자기 앞으로 가져오더니 '이건 그렇게 만지는 게 아니라, 이렇게 만지는 거야!'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나무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물건을 소중히 여기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해가 가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까지 지나치게 방어하는 그 덕후의 모습을 보고 이질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지나치게 자신의 영역에 심취해 있는 그를 보며 '아, 이런 사람을 덕후라고 하는구나' 라고 깨닫게 되었다.
그 덕후는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 분야로부터 파생되는 것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 분야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하여 질문을 받고, 또 답변을 하는 것에 대해서 매우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 답변들에 대해서 긍정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거나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열변을 토하며 나를 설득시키려 하거나 그게 옳은 생각이 아니라는 식으로 말을 하였다. 그의 지나친 반응에 난 '나도 편견에 사로잡혀 있지만 그도 나처럼 편견에 빠져있는 건 아닐까?'라고 느낄 뿐이었다.
그는 덩치가 매우 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고개를 돌릴 정도로 덩치가 컸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만 이동을 해도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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