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와의 만남 잡담


예전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덕후를 만났다. 놀라웠다. 나와는 조금은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 같았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자기의 영역에 침범하지 말라는 느낌을 받았다. 난 그와 소통하기 위하여 그가 가지고 있는 물건에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갔는데 그는 내가 그 물건을 망가뜨릴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정색하면서 그 물건을 자기 앞으로 가져오더니 '이건 그렇게 만지는 게 아니라, 이렇게 만지는 거야!'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나무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물건을 소중히 여기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해가 가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까지 지나치게 방어하는 그 덕후의 모습을 보고 이질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지나치게 자신의 영역에 심취해 있는 그를 보며 '아, 이런 사람을 덕후라고 하는구나' 라고 깨닫게 되었다.

그 덕후는 자신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 전문가 수준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 분야로부터 파생되는 것들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 분야를 구성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하여 질문을 받고, 또 답변을 하는 것에 대해서 매우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 답변들에 대해서 긍정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거나 그렇게 이야기를 하면 열변을 토하며 나를 설득시키려 하거나 그게 옳은 생각이 아니라는 식으로 말을 하였다. 그의 지나친 반응에 난 '나도 편견에 사로잡혀 있지만 그도 나처럼 편견에 빠져있는 건 아닐까?'라고 느낄 뿐이었다.

그는 덩치가 매우 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고개를 돌릴 정도로 덩치가 컸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만 이동을 해도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슬프게도 나 또한 거칠게 숨을 쉬었는데 이건 분명 급체중증가 및 운동부족에 기인한 것일 게다 ㅠ 하지만 안경을 쓰고 있지 않았으며 여드름도 없었다. 하긴, 인터넷에서 보여지는 덕후의 안여돼 이미지는 낄낄거리기 위하여 만들어진 이미지일 뿐이니까. 인상적이었던 건 매우 날카로운 눈매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

유쾌한 일로 만난 게 아니므로 나중에 어떤 식으로라도 재회하게 되면 좆나게 조져놓을 생각이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나도 덕후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서 열정적인 모습, 게다가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사회성 필요) 멋지다. 난 힙덕후가 되고 싶지만 지능이 떨어지고 의지가 박약하며 재정이 열악하여 그러지 못하고 있다. 언젠간 나도 덕후로, 힙덕후로 인정받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덧글

  • 사람해요 2010/10/05 12:40 # 답글

    이거 어딘가 내 얘기가 아닌가 싶다가 안경얘기에서 아 나 아니구나 싶어서 다행...인데 나중되니 은근히 좋은 이야기라 또 아쉽다가도 '조진' 다 하시니 또 다행스럽기도 하고. 죄송해여 지금 잠이 덜 깨서ㅠ
  • 슈3花 2010/10/06 15:23 #

    사람해요 // 물론 치고받고 하면 제가 엄청나게 터지겠지만, 혹시 모르잖아요. 분노게이지가 만땅이면 초인적인 힘이 발휘된다고 하니까욤 ㅠ 꼭 조지고 싶은 놈입니다 ㅠ
  • 앙탈 2010/10/05 16:43 # 답글

    이렇게...카라 덕후인 절 까시는군요 ㅠㅠ
  • 슈3花 2010/10/06 15:23 #

    앙탈 // 까는 게 아니라능 ㅠ 저도 덕후가 되고 싶다능~
  • poolosophy 2010/10/05 18:39 # 답글

    모두들. 한가지쯤에는 다들 덕후 아닐까요. :)
  • 슈3花 2010/10/06 15:24 #

    poolosophy // 슬프게도 저는 덕후인 분야가 하나도 없네요. 물에 물탄 듯, 술에 술탄 듯 ㅠ
  • 쌀밥 2010/10/11 05:20 # 답글

    하하 오타쿠라는 단어는 굳이 나쁜 단어가 아니라 알고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덕후나 십덕후 등에 사용되면서 많이 와전된게 참 재밌는 거 같습니다. 저도 뭔가 하나 디립다 파고 싶은데 그만한 열정과 흥미가 없다는 게 참 슬프네요.
  • 슈3花 2010/10/21 00:01 #

    쌀밥 // 저는 열정만 있을 뿐 실천하지 못하는 의지박약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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