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을 다녀오면서 인상깊게 목격한 것들 잡담

최근에 머리 속이 너무 복잡하고 좀 쉬고 싶어 춘천을 다녀왔다. 콧구멍에 바람 좀 숑숑 집어넣으려는 생각이었다. 오전에는 개인적인 볼일을 보고 망설일 것도 없이 청량리역에서 남춘천행 기차표를 끊었다. 서울에서는 놀러간다고 하면 경춘선 라인에 있는 기차역에서 내려서 즐긴다고 알고 있다. 가평, 청평, 대성리, 강촌.. 뭐 그런 곳들. 주말이니 사람이 많을 것 같았다. 인터넷으로 남춘천행 기차표 예매 현황을 살펴보니 매진이라 입석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우연찮게도 자리가 있었다. 표를 끊고 청량리역에 내려가니 남춘천행 열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늘 지하철만 이용하다가 기차를 타니 기분이 좀 새로웠다. 크게 무언가가 느껴진 게 아니라.. 그냥 집에서 쓰던 마우스를 교체했을 때의 그런 약간 어색한 느낌? 그 생각도 잠시.. 기차에 들어서자 다들 시끌벅적 하다. 친구에게 전화하여 도착시간을 알려주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1. 들떠 있는 사람들.

내가 있는 객실 중간쯤에는 여대생으로 보이는 생기발랄한 여자 무리가 의자를 돌려 마주보고 앉아 시끌시끌 수다를 떨고 있었다. 냐하하하~ 꺄르륵 꺄르륵~. 친구들끼리 엠티를 가는 것처럼 보였다. 귀가 따갑다는 생각보다는 젊음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녀들 틈에 껴서 함께 노가리라도 까고 싶.. 남자들이 워워~ 우워 우워 했으면 미간을 찌푸렸겠지만.. 유독 여자 무리가 눈에 띈 건 내가 아직은 혈기왕성한 수컷이기 때문이겠지. 그녀들 말고도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에 대해 들떠있는 표정을 가진 사람들이 상당수였다. 얼굴에 그런 설렘이 드러나보였다. 지방으로 이동할 때 고속버스를 99%이용하던 나에게 이런 왁자지껄함은 어색했다. 버스는 공간이 협소하고 상대적으로 소음이 적어서 그런가? 왁자지껄한 객실 내부가 어색하긴 하였지만 난 금방 적응하는 남자. 그러려니 했다. 안그러면 내 자신이 외토rwi~♬가 될 것 같아서. 나의 승차 목적은 이들과는 다르지만 들떠 있는 표정을 보는 것, 의욕이나 욕정에 넘치는 현장에 함께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었다. 기차 내부가 좀 많이 더웠다는 것 빼고는 좋았다.


2. 거친 여자.

춘천에 도착하니 날씨가 제법 추웠다. 개콘의 여당당 대표인 김영희위원에게 지적받은 적 있는 북쪽출신은 아니지만 검정색 패딩을 뚫고 들어오는 칼바람은 뼈 속까지 침투하는 듯 했다. 두리번 두리번 하자 출구 쪽에서 친구가 손을 머리 위로 들어 휘휘 저으며 '나 여기있다!' 인증하였다. 친구집에 짐을 풀고 근황토크를 한 뒤 외출 준비를 하였다. 친구가 사는 곳이 강원대학교 후문쪽이라 그쪽에서 한 잔 하기로 정했다. 나에게 어여쁜 여대생을 마음껏 볼 수 있다고 하여 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콜!을 외쳤다. 요즘은 무리를 지어 다니는 여대생들만 봐도 그냥 기분이 좋다. 후작업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고.. 친구가 맛있는 고깃집이 있다고 하여 그쪽으로 향했다. 구석진 곳을 찾아 자리 하고 소주 한 잔을 기울였다. 두런두런 이야기하다가도 빅재미 빵빵 터지면 크하하하하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신나게 달리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여대생으로 추정되는 여자 3명이 들어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친구와 서로 눈빛 교환 후 그림의 떡임을 인지하고 다시 이야기에 몰입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젊음으로 가득차고 뽀송뽀송한 피부를 가지고 있는 포켓남이 고깃집 안으로 들어와서 그녀들 옆에 날름 앉더라. 그럼 그렇지. 뭔가 모를 패배감이 밀려오는 듯 하여 그 패배감을 반사시키려 오히려 우리의 시간에 몰입을 하려고 하였는데 그쪽에서 거친 쌍소리가 들려왔다. 여자 3명이 서로 친구인지 욕이란 욕은 다 내뱉으면서 대화를 하는 것이었다. 술을 많이 먹은 것 같지도 않은데.. 포켓남은 그 3명 중 한 명의 남친이었는데 그가 있건 말건 전혀 거침이 없었다. '너', '야'라는 일반적인 부름 대신 '씨발년아', '병신같은 년아', '좆같은 년아', '개년아' 등으로 시작하여 '씨발', '지랄'로 마무리되는 대화. 욕 배틀 붙는 줄 알았다. 아, 신선해. '이게 내가 동경하던 여대생 무리들의 대화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가슴 한 곳에서 회의감이 밀려왔다. 물론 다 그렇진 않겠지만.


3. 불륜으로 추정되는 아저씨, 아줌마들

친구와 거나하게 마신 후 고깃집을 어찌 나왔는지 모르겠다. 기억이 나는 건 친구가 중간에 사라져버린 것. 그리고 택시를 타고 여기저기를 헤맸고 결국에는 어찌된건지는 모르겠지만 친구와 조우하였던 것. 아침에 벌떡 일어나 정신을 차려보니 친구집에서 자고 있더라. 지끈거리는 머리와 쓰린 속을 붙잡고 맛있다는 중국집에 전화해서 짬뽕 2그릇 + 탕수육 1세트에 밥 2공기를 배달 시켜 먹은 후 조금 더 쉬다가 이렇게 계속 있다가는 이 집구석을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서 힘든 몸을 일으켜 재빨리 샤워하고 친구에게 작별을 고한 후 집을 나왔다. 바깥은 여전히 추웠다. 찬바람을 쐬니 정신이 좀 들었다. 겨울은 술마신 다음 날 찬바람을 쐴 수 있어서 참 좋다. 남춘천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역에 도착하니 역사 안에는 사람이 꽉 차 있었다.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표가 있을까? 하지만 기차는 입석이라는 훌륭하지만 빡센 제도가 있지 않은가. 표를 끊으니 창구직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입석입니다~"라고 하더라. 1시간 40분 정도를 서서 가야 한단 말인가! 오랜만에 기차를 타는 것이니 이것도 나쁘지 않겠지..라고 자위(그 자위 아님)를 하며 기차를 기다렸다. 입석도 좋은 자리가 있기에 기차를 타러 가기 위한 역 내부의 문이 열리자마자 재빨리 달려 객실 출입구 쪽으로 향했다. 객실 양쪽의 출입구 쪽 맨 끝 좌석의 뒷공간이 입석의 노른자. 난 자리를 차지하였으나,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그 자리를 나오고 말았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앉아서 가는 사람들이 부러웠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암튼, 난 객실과 객실을 연결해주는 다소 시끄러운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세면대가 있는 곳이었는데 세면대가 낮아서 엉덩이를 걸칠 수 있었다. 키가 더 컸더라면 좋았겠지만.. 그 세면대에는 조명도 환하게 비추고 있어서 가지고 간 책을 읽기에도 참 좋았다. 의외로 세면을 하고자 하는 사람이 적었기에 도착할 때까지 약 3~4회 정도만 자리를 비켜주면 되었다. 내가 자리를 하고 있었기에 세면을 못하고 그냥 가신 분들도 있으려나.. 그렇다면 ㅈㅅ. 암튼 그렇게 기대서 책을 읽어내려갔다. 의외로 집중이 잘돼서 놀랐다. 목이 좀 뻐근하고 책을 들고 있던 팔도 좀 아파서 스트레칭을 하고 시계를 보니 도착 전까지 약 30분 가량이 남은 것이었다. 언제 또 탈지 모르는 기차이기에 좀 구경을 하고 싶어서 입석 노른자 자리를 포기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입석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리가 아플 여친을 걱정하는 커플, 곧 있으면 앉아서 갈 수 있다며 징징거리는 자식들을 설득하는 부모, 남자끼리, 여자끼리, 남녀끼리 신나서 떠들어대는 사람들.. 공간만 있다면 종이박스 같은 것을 깔고 자리를 잡고 있었다. 더 나은 입석을 원하는 사람들은 박스를 들고 계속 이동하는 모습도 보였다. 재미있다. 그래서 기차 첫 객실로 이동해서 천천히 끝 객실까지 이동하였다. 그런데 끝 객실 전 통로에서 등산복을 하신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잔뜩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벼운 목례를 하고 지나가려고 하는데 '아유~ 안되는데~ 아유~'라며 안절부절 못하시는 것이었다. 호기심도 생기거니와 기차의 맨 마지막 객실에서 뒤돌아 바깥을 볼 때의 레일을 따라 지나온 자리가 보이는 곳을 보고 싶어 '죄송합니다, 지나갈게요'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리고 그 공간으로 들어가자 놀라운 광경이 보였다. 세면대처럼 보이는 곳에 한 아줌마가 다리를 벌린 채로 앉아 있고 그 다리 사이로 한 아저씨가 서서 몸을 끼운 채 격렬하게 딥키스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너무 놀랐다. 아니, 이걸 뭐라고 불러야하지? 기차떡? 아니면 글로벌하게 추추떡? 당황해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 공간을 지나치려고 하자 그제야 아줌마가 눈치를 챘는지 입술을 떼어내며 아저씨를 팍팍 때리는 것이었다. '어이구 남사스러워~!!'라는 매치가 안되는 멘트와 함께. 그 공간을 정신없이 지나쳐 마지막 객실에 도착하였다. 애초에 보고자 했던 것보다 더욱 놀라운 것을 목격하니 혼란스러웠다. '그 아저씨와 아줌마는 도대체 뭐지?' 생각을 하자 아는 동생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동생이 말하길 등산로 주변에 모텔을 운영하는 형이 있는데 그 형이 말하길 '일요일 점심시간에는 빈 모텔이 없다'고 했단다. 이용자들의 복장 대부분은 등산복이라고 한다. 부부가 집에서 애정행위를 하여도 될텐데 굳이 모텔에서.. 아니면 내가 목격했듯이 기차 객실 간 통로에서.. 왜? 왜? 그렇다면 정말 뜨거운 부부관계이거나(이런 경우는 거의 없을 것 같고) 불륜관계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불륜이라고 더욱 확신하게 된 건 마지막 객실에서 나와 다른 객실로 이동할 때 방금전에 목격했던 통로에서 아저씨 2명과 아줌마 1명이 또(!) 서로 주무르고 있었던 것. 허~참.


4. 크리스마스 트리.

중년의 뜨거움을 목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북역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자 빈자리가 생겼다. 자리에 앉아 10분정도 있으니 기차가 청량리역에 도착하였다. 바깥은 이미 어두웠다. 지하철 통로가 아닌 기차역 통로로 나오니 좀 어색했다. 청량리역 내부를 한 번 쭈욱 스캔한 다음 롯데백화점 쪽으로 나왔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뭐가 반짝반짝 한다. 크리스마스 트리가 요기잉네~ 명동쪽에 있는 롯데백화점의 크리스마스 트리보다는 예쁘지 않지만 나름 반짝반짝하는 게 예쁘더라. 크리스마스라..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뭐하지? 딱히 계획이 없네.. 교회라도 다녔다면 교회사람들이랑 보낼텐데 교회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연차도 많이 남았겠다.. 휴가내고 고향이나 다녀올까? 크리스마스는 결혼한 내 친구 생일인데.. 그 친구는 가족끼리 오붓하게 보낼테고.. 생일축하 전화나 꼭 해야겠다.. 내 생일에 전화도 해줬는데.. 근데 크리스마스가 뭐라고 왜 이렇게 시끄럽게 구는 거야.. 크리스마스는 그냥 쉬는 날 아닌가? 꼭 뭐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집에서 쉬어야겠다.. 뭐 이런 잡다한 생각이 들었다.


암튼, 이번 춘천을 다녀오면서 한 번씩 콧구멍에 바람을 넣어주는 것이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래 목적이었던 머리 속 교통정리도 좀 된 것 같고. 근데.. 나도 디카로 사진 예쁘게 찍어서 올리고 싶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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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시리어스 2010/12/20 20:52 # 답글

    경춘선이 사라져버렸네요. 셤만 아니였음 간이역들도 다 다녀보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가득남는 그런 날입니다.
    학교 셤도 끝났으니 슬슬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이 드네요^^
  • 슈3花 2010/12/23 23:36 #

    시리어스 // 그렇네요. 갔더니 복선전철 개통한다고 그러더라고요. 경춘선 사라진다는 걸 염두하고 간건 아니었는데.. 가면서 본 경치들. 잘 보고 온 것 같아요. 시리어스님도 떠나세요!! 여행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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