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집에서 짐 정리를 하며 든 생각 잡담

8일 어버이날과 10일 석가탄신일 사이에 휴가를 내는 바람에 쉬는 날이 길어져 주말에 고향에 다녀왔다. 전에 살던 고향 집 주인이 갑자기 집을 빼달라고 해서 부득이 하게 고향 집을 이사하게 되었다. 이사를 평일에 하여 직접 내려가서 이사하는 데에 도움을 드리지 못했기에 이번에 내려가서 짐을 좀 정리하려고 했으나 이미 짐이 거의 다 정리된 상태였다. (부모님께서 힘드셨을 것 같다 ㅠ 죄송합니다.)

내 방에 들어갔더니 내가 가지고 있던 짐들이 거의 3~4상자 정도로 따로 빠져있었다. 버릴 건 버리고 놔둘 건 놔두라고 하시는 부모님 말씀에 방바닥에 앉아서 자잘한 짐들을 꺼내어 정리를 시작했다.


1. 편지

중학교 시절에 나에게 고백했던 아이의 편지, 고등학교 시절에 사귀었던 여자 친구의 편지 및 엽서 꾸러미, 대학교 시절 사귀었던 여자 친구의 편지들과 군 시절 가족, 친구, 선·후배들로부터 받았던 편지들. 여자 친구들에게 받았던 편지들은 모두 버리기로 하였고, 가족, 친구, 선·후배들에게 받은 편지는 남겨두기로 했다. 가족들이 나에 대해서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편지를 읽으면서 재차 느끼게 되었고, 지금은 웃고 떠들면서 상호 간에 상욕하는 친구들이 그 때에만해도 어찌나 감수성이 풍부하고 쩔었었는지 읽는 내내 손발이 퇴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웃음이 나왔다. 나중에 친구놈들에게 놀려줘야지.

버리기로 한 편지 즉, 여자 친구들에게 받았던 편지가 의외로 많았다. 하긴, 대학교 때 사귄 여자 친구는 입대 후 위문편지를 거의 매일 보내다시피 하였으니 많을 수 밖에. 추억을 떠올리며 하나 둘 씩 읽어 나가다보니 그 때는 죽고 못살 것 처럼 지내놓고 헤어질 때는 너무 사소한 이유로 헤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양다리를 걸친 상년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만나고 헤어진 후에는 좋은 추억만 남는 것 같다.


2. 일기장

나는 고등학교 때 일기를 썼었다.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기 전에 일기를 썼었다. 공부하기 전 심기일전하기 위함이었기도 했지만, 무료하게 독서실에서 보내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소비하려는 멍청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작성했던 일기장도 짐에서 발견되었다. 독서실에 가는 날이면, 아니면 집에서 밤에 공부를 하기 전이면.. 특별한 일이 없는 날은 일기를 썼었나보다. 일기장이 4권(인가 5권인가..) 정도 나왔다.

짐 정리를 하다 말고 그 자리에 앉아서 일기장에 싸질러놓은 글들을 읽어보았는데 그 당시에는 학업에 대한 고민보다는 친구들과의 관계, 가정불화 등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친구들과 술집에 가서 술 마신 이야기, 친구와 다투고 또 화해한 이야기, 당구를 잘 치지 못해서 친구들로부터 멀어져서 왕따처럼 지내던 이야기, 극복하고자 당구장에 갔다가 학생주임에게 걸려서 귀싸대귀 맞은 이야기, 철없이 부모님께 반항했던 이야기, 형과의 다툼, 이현도에 열광하고 앨범 발매를 학수고대하던 이야기, 버스 정류장에서 보고 반하게 된 여성에 대한 이야기, 시험을 앞두고 스트레스를 받던 이야기 등.. 고등학교 시절에 있었던 대부분의 일들과 고민들이 일기장에 담겨 있었다. 글 끝에는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캐릭터를 만들어서 그림으로 그날의 기분을 표현하는 짓도 했더라. 지금 생각하면 웃어 넘길 수 있는 것들이 그 당시에는 뭐가 그렇게 큰 고민이었는지.. 지금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들도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생각해보면 웃어 넘길 수 있는 것들이겠지.


3. 힙합 잡지 '바운스(THE BOUNCE)'

예전에 YG에서 바운스(THE BOUNCE)라는 힙합 잡지를 매달 무가지식으로 배포하였었다. 국내·외 힙합 뮤지션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앨범과 향후 행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였으며, 기획기사, 공연, 패션, 가사쓰기, 외국 가사 해석 등 다양한 힙합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나처럼 힙합에 무지한 사람에게는 매우 유용한 잡지였다. 게다가 종이 재질도 좋고 올컬러로 제작되어 여러모로 훌륭한 잡지였다. YG에서 나오는 거라 YG 소속 뮤지션들이 메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MF매장을 통해서 배포하거나, 무슨.. 매장인지는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 매장에서 수령하였는데 난 매달 그 잡지를 수령하여 읽곤 했다. 군대에 가기 전에도 사귀던 여자 친구에게 잡지를 꼭 수령해달라고 부탁을 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녀는 귀찮았는지 수령해주지 않았지만. 아, 이 잡지는 현재에는 발간되지 않고 있다.

암튼, 짐 정리를 하던 중에 바운스 한 권을 발견했다. 부모님께 '다른 잡지는 어디로 갔나요?'라고 묻자, '폐지ㄱㄱㄱㄱ'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고 허탈해진 나는 외롭게 홀로 남은 그 한 권의 잡지를 다시 펼쳐 보았다. 다 읽기에는 시간이 없어서 한국힙합 뮤지션에 대한 글만 조금 읽어 보았다. 지금은 한국 힙합씬에서 거대한(?) 역할을 하고 있는 버벌진트(Verbal Jint)와 유엠씨(UMC)가 '2001년 바운스가 선정한 루키'라는 타이틀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인터뷰에서는 음악을 접하게 된 계기, 앞으로의 행보 등에 대해서 묻고 있는데 그 당시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읽었는데 내용을 보니 지금과 비교해도 별로 차이가 없었다.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느낀 게 당시만 해도 매우 척박하던 한국 힙합씬에 빛과 소금과 같은 잡지였다는 것이다. 어떠한 이유로 인하여 폐간하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YG의 바운스 잡지 발간은 한국 힙합씬에 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한국 힙합과 관련하여 다양한 콘텐츠들이 생산되고 있고 손 안에서 쉽게 접할 수 있지만.. 난 괜히 제2의 바운스를 기대해본다.





덧글

  • 2011/05/11 15:5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슈3花 2011/05/11 16:10 #

    비공개 // 우옹~ 의외로 많은 분들이 구독하셨더라고요 ^^ 잠자고 있던 잡지 다시 한 번 읽어보시면 감회가 새로우실 거예요. 반갑습니다. ^^
  • LeMinette 2011/05/11 21:30 # 답글

    힙합잡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냥 재대로된 음악잡지좀 나왔으면 ㅠㅠ
  • 슈3花 2011/05/12 09:05 #

    LeMinette // 헉.. 요즘 그 정도인가요? 음악잡지 안본지 너무 오래되어서 ㅠㅠ
  • 로사 2011/05/12 12:36 # 답글

    슈삼님 감수성이.. ^^ 제 주변에 이런 남자인 친구들이 있었음 좋겠네요! ㅋㅋ
  • 슈3花 2011/05/13 09:23 #

    로사 // 제가 아직 철이 들지 않아서.. '남자 친구'는 아니고 '남자인 친구'인 거지요?ㅎ
  • Vm- 2011/05/14 07:31 #

    "남자 사람"을 얘기하는 거 같네요. as in 여자 사람. ㅎㅎ
  • 로사 2011/05/14 10:30 #

    ㅋㅋㅋㅋㅋㅋㅋ 남자사람친구요 (no offense) ㅋㅋㅋ
    아 이거 실언인가요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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