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난 수능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힙합음악을 찾아 웹서핑을 하곤 했다. 외지에서 자취하는 형의 방에만 컴퓨터가 있었기에 내가 웹서핑을 하는 장소는 주로 PC방이었다. 그 당시에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PC방이 흥하던 시기였는데, PC방에 가면 남자들은 80% 이상이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거의 테트리스와 채팅을 하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스타크래프트를 하기 보다는 혼자 노래를 들으며 웹서핑을 했다. (그때는 벅스에서 모든 노래를 무료로 들을 수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인터넷. 너무 신기했다. 검색만 하면 원하는 정보가 쏙쏙 나오니 말이다. 그렇게 웹서핑을 통하여 힙합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있었다. 힙합의 4대 요소 뭐 이런 것들ㅋ

그 때의 내 관심사가 힙합이었기에 그 관심사를 공유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변 친구들은 힙합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난 온라인 채팅창으로 손가락을 돌렸다. 당시에는 지오피아라는 채팅 사이트가 있었다. 지금 운영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사이트이니 헷갈리면 아니된다능. 지오피아는 당시 번개하는데에 매우 최적화된 사이트였다. 지역별 카테고리를 찾아서 임시 닉네임을 설정하고 접속하면 화면 우측이나 좌측에 닉네임 목록이 뜨게 된다. 그냥 대화를 입력하면 전체 채팅이 가능하며 닉네임 목록에서 '섹시녀', '빨간여우', '겸둥이' 등 여성성이 보이는 닉네임을 골라서 특수기호와 닉네임을 연결해서 입력한 후 한 칸 띄운 후 글을 하면 상대와 귓속말로 채팅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난 여성으로 판단되는 닉네임에게 수 없이 귓속말을 시도하였다.(힙합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기에 동성에게도 힙합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근데 뭐?'라는 반응이 100%였다) 그때는 지금과는 달리 남녀 비율이 일방적이지 않았기에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사는 지역과 나이 따위를 물어 보고 이런 저런 노가리를 깐 이후에 '힙합 좋아해?'라는 말을 꼭 물어봤었다. 좋아한다고 하면 '2pac 알아?'라고 물어봤다. 99.9%가 모른다고 했었다. 난 그 때 힙합을 듣는 사람들이라면 2pac을 100% 알 것이라는 착각을 했었던 것 같다. 암튼, 채팅으로도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수 없는 것일까?라는 실망감에 빠져있을 당시 힙합간지를 뿜어내는 닉네임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힙합간지 닉네임 : 야, 너 힙합 좋아해?
나 : 응, 나 힙합 좋아해, 그럼 너 2pac 알아?
힙합간지 닉네임 : 그럼. 투팍 사망했잖아.
나 : 와~ 반가워. 투팍은 웨스트코스트에서 가장 잘하는 랩퍼야.
힙합간지 닉네임 : 근데 난 DMX가 더 좋아.
나 : 너 DMX도 알아? 근데 DMX는 별로야. 진짜는 2pac이야.
힙합간지 닉네임 : 왜? 목소리가 하드코어 한 게 좋잖아.
나 : 아.. 그런가?
힙합간지 닉네임 : 너 남자니?
나 : 응. 넌? 근데 왜 반말이냐? 나 이번에 수능 봤어.
힙합간지 닉네임 : 난 여자야. 너랑 동갑이니까 반말했지.
나 : 어디에 살아?
힙합간지 닉네임 : OO동.
나 : 나도 그 쪽 사는데
힙합간지 닉네임 : 너 지금 어디야?
나 : OOPC방
힙합간지 닉네임 : 나도 그쪽인데 우리 만날까?
나 : (몹시 당황) 나 지금 친구들이랑 같이 있는데..
힙합간지 닉네임 :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나와. 만나자.
나 : (심하게 고민 후) 알겠어. 그럼 프로O펙스 앞에서 봐.
그렇게 하게 된 내 인생의 첫 번개. 그녀는 반짝이는 검정색 패딩파카에 힙합바지를 입고 있었다. 긴 생머리에 눈은 크고 얼굴은 하얀 게 너무 예뻐보였다. 아, 대박!이라는 느낌과 함께 어색하게 인사를 하자 반갑게 맞이해줬다. 뭔가 바빠보이는 듯한 그녀. 내가 마음에 안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서로 간단한 인사와 함께 연락처만 주고 받고 헤어졌다.
그렇게 한 두 번 정도 연락하면서 지내다가 같이 술을 한 잔하게 되었는데 그녀가 사귀자는 게 아닌가? 오 놀라워라. 난 꿈인지 생신지 믿기지 않았다. 나중에 물어보니 노래방에서 랩을 지껄이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었다고 하더라. 덥썩 떡밥을 물었다. 오케이. 사귀자. 그렇게 그녀와 사귀게 되었다. 하지만 여자를 사귀어 본 경험이 많이 없었기에 매우 서툴게 관계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녀는 슬슬 짜증을 났다. 그녀가 먼저 차 끊어질 때까지 있어줬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택시 태워서 집에 보내 주고,지금이야 물고 빨고 난리를 치겠지만 스킨쉽도 하나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의사양반...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는 짜증어택에도 불구하고 난 그녀를 여왕 떠받들 듯이 모셨다. 그녀가 '어디에 있느냐? 나 어딘데 데리러 와!'라고 하면 없는 돈 모아서 택시타고 그녀에게 출동. 출동하고 난 후 택시로 다시 집까지 모셔다 드리기. 배고프다고 하면 근처 음식점에서 음식 포장해서 가져다 드리기. 듣고자 하는 음악이 있으면 음원을 구해서(이 당시만 해도 힙합 음원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메일로 전송해 드리기. 그녀와 만나면서 데이트의 모든 비용 중 99.9%를 댔으며 기념일에는 꼬박꼬박 선물도 사줬다. 난 그게 호구인줄 몰랐다. 그렇게 난.. 호구로 지냈다.
게다가 날 무시하는 어떤 발언을 내뱉어도 허허 거리며 이해했다. 예를 들어서 '벼X시장', '교X로'와 같은 정보지를 보고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그 곳에서는 전단지 배포하는 사람을 뽑는 것이었다. 갔더니 사무실에는 책상 하나와 의자 몇 개가 전부. 분위기가 살벌한 것이 아닌가. 금목걸이 사이로 힐끔힐끔 드러나는 문신은 날 오그라들게 만들었다. 그 곳은 차를 담보로 해서 대출을 해주고 돈을 받아내는.. 뭐 그런 곳이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주차장 같은 곳에 가서 자동차 창문 사이에 명함크기의 홍보지를 꽂는 작업이었다. 차를 타고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안뛰어!! 얼른 뛰어!!"라면서 짐승 부리듯이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닌가? 오후에는 갑자기 비가 왔는데 우산조차 주지 않으면서 일을 시켰다. 차를 타고 이동 중에는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사모님'에게 전화를 하여 협박식으로 돈을 달라고 요구를 했다. 하루 하고 그만 뒀다. 물론 일당을 받지 못했다. 그때는 노동에 대한 개념이 없었기도 했지만 달라고 덤볐다가는.. 두렵기도 했다. 지금이야 노동부 ㄱㄱ하겠지만. 다음 날 이렇게 된 사실을 그녀를 만나서 이야기 했다. 내가 기대한 그녀의 반응은 "어이쿠, 무슨 그런 사람들이 다 있어. 큰일날 뻔 했네. 다음부터 잘 알아보고 해. 고생했어!"였다. 하지만, 그녀는 한심하다는 표정과 함께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해주었다. "뭐야~ 병신같이 돈도 못받고..". 병신취급을 당했다. 친구들은 여자친구에게 병신취급을 당한다며 날 놀리거나 헤어지라고 권유했지만 그래도 난 괜찮다며 그녀를 만났다.

그 때 꿈을 깼어야 했어
그렇게 호구로 지내던 중 학교 친구들과 카페에 갔는데 거기서 그녀가 보이는 게 아닌가? 건너편에는 내 초등학교 남자 동창이 앉아 있었다. 뭔가 싶었다. 이상한 분위기를 직감한 나는 당황한 나머지 따지지도 못하고 그냥 돌아서 나왔다. 추후에 알아보니 소개팅을 했다는.. 그제서야 난 정신을 차렸다. 아, 난 호구였구나. 너무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나중에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본 결과 동창 놈은 나랑 사귀는지 모르고 나왔다고 하니.. 그 놈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녀를 만나서 헤어지자고 통보를 했다. 그녀는 담담하게 받아드리더니 "알겠어, 하지만 우리 친구로 지내"라고 하더라. 어처구니가 없어서 싫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넌 좋은 아이이고..'드립을 치면서 계속 친구로 남고 싶다고 했다. 난 거절에 거절을 하다가 '뭐라고? 개씨발 좆같은 게.. 아가리를 확 찢어서 윗입술을 뒤집어서 뒷목까지 제껴버리고 아랫입술은 엄지발톱과 만나게 해버릴라!!'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난 그녀가 말한 병신이 맞았나 보다. "그래, 알겠어."라고 해버렸다.
그 이후로도 몇 번 만나다가 그녀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내가 살던 지역을 떠나게 되었다. 떠난 이후에도 한 번 만나서 생쑈를 한 적이 있는데 이건 나중에 기회가 되면 써야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의 난 '호구 종결자'였던 것 같다. 하기 싫은 건 '싫다', 아닌 건 '아니다'라고 하지도 못한 채로 내 기준도 없이 그냥 그녀가 하자는 대로 끌려 다니는.. 오직 그녀의 편의를 위해 움직이는 자금줄이었다. 당시의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가 그녀를 엄청나게 좋아했던 것도 아닌 것 같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지난 일이라서 그런가.. 그 때의 난 그녀에게 미쳤던 것 같진 않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왜 그렇게 호구짓을 하고 다녔는지 모르겠다.

+ 추가
어제 폭풍세수하다가 오른쪽 네번째 손가락이 오른쪽 콧구멍에 들어가 강하게 쑤시는 바람에 코피가 났다. 살다 살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지금도 코가 아프다. peace.
난 수능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힙합음악을 찾아 웹서핑을 하곤 했다. 외지에서 자취하는 형의 방에만 컴퓨터가 있었기에 내가 웹서핑을 하는 장소는 주로 PC방이었다. 그 당시에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PC방이 흥하던 시기였는데, PC방에 가면 남자들은 80% 이상이 스타크래프트를 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거의 테트리스와 채팅을 하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스타크래프트를 하기 보다는 혼자 노래를 들으며 웹서핑을 했다. (그때는 벅스에서 모든 노래를 무료로 들을 수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인터넷. 너무 신기했다. 검색만 하면 원하는 정보가 쏙쏙 나오니 말이다. 그렇게 웹서핑을 통하여 힙합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있었다. 힙합의 4대 요소 뭐 이런 것들ㅋ

이거시 히팝이다
그 때의 내 관심사가 힙합이었기에 그 관심사를 공유하고 싶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변 친구들은 힙합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난 온라인 채팅창으로 손가락을 돌렸다. 당시에는 지오피아라는 채팅 사이트가 있었다. 지금 운영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사이트이니 헷갈리면 아니된다능. 지오피아는 당시 번개하는데에 매우 최적화된 사이트였다. 지역별 카테고리를 찾아서 임시 닉네임을 설정하고 접속하면 화면 우측이나 좌측에 닉네임 목록이 뜨게 된다. 그냥 대화를 입력하면 전체 채팅이 가능하며 닉네임 목록에서 '섹시녀', '빨간여우', '겸둥이' 등 여성성이 보이는 닉네임을 골라서 특수기호와 닉네임을 연결해서 입력한 후 한 칸 띄운 후 글을 하면 상대와 귓속말로 채팅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난 여성으로 판단되는 닉네임에게 수 없이 귓속말을 시도하였다.(힙합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기에 동성에게도 힙합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근데 뭐?'라는 반응이 100%였다) 그때는 지금과는 달리 남녀 비율이 일방적이지 않았기에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사는 지역과 나이 따위를 물어 보고 이런 저런 노가리를 깐 이후에 '힙합 좋아해?'라는 말을 꼭 물어봤었다. 좋아한다고 하면 '2pac 알아?'라고 물어봤다. 99.9%가 모른다고 했었다. 난 그 때 힙합을 듣는 사람들이라면 2pac을 100% 알 것이라는 착각을 했었던 것 같다. 암튼, 채팅으로도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수 없는 것일까?라는 실망감에 빠져있을 당시 힙합간지를 뿜어내는 닉네임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힙합간지 닉네임 : 야, 너 힙합 좋아해?
나 : 응, 나 힙합 좋아해, 그럼 너 2pac 알아?
힙합간지 닉네임 : 그럼. 투팍 사망했잖아.
나 : 와~ 반가워. 투팍은 웨스트코스트에서 가장 잘하는 랩퍼야.
힙합간지 닉네임 : 근데 난 DMX가 더 좋아.
나 : 너 DMX도 알아? 근데 DMX는 별로야. 진짜는 2pac이야.
힙합간지 닉네임 : 왜? 목소리가 하드코어 한 게 좋잖아.
나 : 아.. 그런가?
힙합간지 닉네임 : 너 남자니?
나 : 응. 넌? 근데 왜 반말이냐? 나 이번에 수능 봤어.
힙합간지 닉네임 : 난 여자야. 너랑 동갑이니까 반말했지.
나 : 어디에 살아?
힙합간지 닉네임 : OO동.
나 : 나도 그 쪽 사는데
힙합간지 닉네임 : 너 지금 어디야?
나 : OOPC방
힙합간지 닉네임 : 나도 그쪽인데 우리 만날까?
나 : (몹시 당황) 나 지금 친구들이랑 같이 있는데..
힙합간지 닉네임 :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나와. 만나자.
나 : (심하게 고민 후) 알겠어. 그럼 프로O펙스 앞에서 봐.
그렇게 하게 된 내 인생의 첫 번개. 그녀는 반짝이는 검정색 패딩파카에 힙합바지를 입고 있었다. 긴 생머리에 눈은 크고 얼굴은 하얀 게 너무 예뻐보였다. 아, 대박!이라는 느낌과 함께 어색하게 인사를 하자 반갑게 맞이해줬다. 뭔가 바빠보이는 듯한 그녀. 내가 마음에 안들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서로 간단한 인사와 함께 연락처만 주고 받고 헤어졌다.
그렇게 한 두 번 정도 연락하면서 지내다가 같이 술을 한 잔하게 되었는데 그녀가 사귀자는 게 아닌가? 오 놀라워라. 난 꿈인지 생신지 믿기지 않았다. 나중에 물어보니 노래방에서 랩을 지껄이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었다고 하더라. 덥썩 떡밥을 물었다. 오케이. 사귀자. 그렇게 그녀와 사귀게 되었다. 하지만 여자를 사귀어 본 경험이 많이 없었기에 매우 서툴게 관계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녀는 슬슬 짜증을 났다. 그녀가 먼저 차 끊어질 때까지 있어줬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택시 태워서 집에 보내 주고,

의사양반...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는 짜증어택에도 불구하고 난 그녀를 여왕 떠받들 듯이 모셨다. 그녀가 '어디에 있느냐? 나 어딘데 데리러 와!'라고 하면 없는 돈 모아서 택시타고 그녀에게 출동. 출동하고 난 후 택시로 다시 집까지 모셔다 드리기. 배고프다고 하면 근처 음식점에서 음식 포장해서 가져다 드리기. 듣고자 하는 음악이 있으면 음원을 구해서(이 당시만 해도 힙합 음원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메일로 전송해 드리기. 그녀와 만나면서 데이트의 모든 비용 중 99.9%를 댔으며 기념일에는 꼬박꼬박 선물도 사줬다. 난 그게 호구인줄 몰랐다. 그렇게 난.. 호구로 지냈다.
게다가 날 무시하는 어떤 발언을 내뱉어도 허허 거리며 이해했다. 예를 들어서 '벼X시장', '교X로'와 같은 정보지를 보고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그 곳에서는 전단지 배포하는 사람을 뽑는 것이었다. 갔더니 사무실에는 책상 하나와 의자 몇 개가 전부. 분위기가 살벌한 것이 아닌가. 금목걸이 사이로 힐끔힐끔 드러나는 문신은 날 오그라들게 만들었다. 그 곳은 차를 담보로 해서 대출을 해주고 돈을 받아내는.. 뭐 그런 곳이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주차장 같은 곳에 가서 자동차 창문 사이에 명함크기의 홍보지를 꽂는 작업이었다. 차를 타고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안뛰어!! 얼른 뛰어!!"라면서 짐승 부리듯이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닌가? 오후에는 갑자기 비가 왔는데 우산조차 주지 않으면서 일을 시켰다. 차를 타고 이동 중에는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사모님'에게 전화를 하여 협박식으로 돈을 달라고 요구를 했다. 하루 하고 그만 뒀다. 물론 일당을 받지 못했다. 그때는 노동에 대한 개념이 없었기도 했지만 달라고 덤볐다가는.. 두렵기도 했다. 지금이야 노동부 ㄱㄱ하겠지만. 다음 날 이렇게 된 사실을 그녀를 만나서 이야기 했다. 내가 기대한 그녀의 반응은 "어이쿠, 무슨 그런 사람들이 다 있어. 큰일날 뻔 했네. 다음부터 잘 알아보고 해. 고생했어!"였다. 하지만, 그녀는 한심하다는 표정과 함께 다음과 같은 대답을 해주었다. "뭐야~ 병신같이 돈도 못받고..". 병신취급을 당했다. 친구들은 여자친구에게 병신취급을 당한다며 날 놀리거나 헤어지라고 권유했지만 그래도 난 괜찮다며 그녀를 만났다.

그 때 꿈을 깼어야 했어
그렇게 호구로 지내던 중 학교 친구들과 카페에 갔는데 거기서 그녀가 보이는 게 아닌가? 건너편에는 내 초등학교 남자 동창이 앉아 있었다. 뭔가 싶었다. 이상한 분위기를 직감한 나는 당황한 나머지 따지지도 못하고 그냥 돌아서 나왔다. 추후에 알아보니 소개팅을 했다는.. 그제서야 난 정신을 차렸다. 아, 난 호구였구나. 너무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나중에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본 결과 동창 놈은 나랑 사귀는지 모르고 나왔다고 하니.. 그 놈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녀를 만나서 헤어지자고 통보를 했다. 그녀는 담담하게 받아드리더니 "알겠어, 하지만 우리 친구로 지내"라고 하더라. 어처구니가 없어서 싫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넌 좋은 아이이고..'드립을 치면서 계속 친구로 남고 싶다고 했다. 난 거절에 거절을 하다가 '뭐라고? 개씨발 좆같은 게.. 아가리를 확 찢어서 윗입술을 뒤집어서 뒷목까지 제껴버리고 아랫입술은 엄지발톱과 만나게 해버릴라!!'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난 그녀가 말한 병신이 맞았나 보다. "그래, 알겠어."라고 해버렸다.
그 이후로도 몇 번 만나다가 그녀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내가 살던 지역을 떠나게 되었다. 떠난 이후에도 한 번 만나서 생쑈를 한 적이 있는데 이건 나중에 기회가 되면 써야겠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의 난 '호구 종결자'였던 것 같다. 하기 싫은 건 '싫다', 아닌 건 '아니다'라고 하지도 못한 채로 내 기준도 없이 그냥 그녀가 하자는 대로 끌려 다니는.. 오직 그녀의 편의를 위해 움직이는 자금줄이었다. 당시의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가 그녀를 엄청나게 좋아했던 것도 아닌 것 같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지난 일이라서 그런가.. 그 때의 난 그녀에게 미쳤던 것 같진 않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왜 그렇게 호구짓을 하고 다녔는지 모르겠다.

내 안에 호구 있다
+ 추가
어제 폭풍세수하다가 오른쪽 네번째 손가락이 오른쪽 콧구멍에 들어가 강하게 쑤시는 바람에 코피가 났다. 살다 살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지금도 코가 아프다. peace.
덧글
근데 저랑 비슷한 나이인가보군요. 옛기억이 새록새록....그리고 나도 호구짓을.....안했네? 운이 좋은 남자였군요 저는.
글구 첫연애때부터 개념충만했던지라 돈을 뜯긴다던지 그런건 전혀없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전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주위에 데이트비용으로 곤혹스러워하던 남자가 많더군요;;
저는 왜 남자가 데이트 비용을 다 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아마도 상대방이 낼 의도가 없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요. 다 핑계일 뿐이고.. 호구는 호구입니다. ㅠ
남자가 바보스러운 맛이 있어야 제 맛이지ㅋㅋㅋ
그리고 PC방에서 테트리스 하는 여자... 그게 .. 저 ㅋㅋㅋ
한 6개월 정도 중독 됐던 것 같아요.
글 너무 재밌어요^^
아차차차차차차 슈삼화님 슈삼화님 슈삼화님 슈삼화님 슈삼화님~
그거 보셨어요?
유엠씨 오라버니가 트위터에 슈삼화님 글을 공유했던데요~
아 신기해요 ^-^
앗, 말씀 보고 바로 확인했습니다. 절 불러주시는 게 막 느껴질 정도군요. 트위터를 초반에 반짝 하다보니.. 팔로잉은 해놨었는데.. 역시 스마트폰이 있어야... ㅠ 유횽 소속사에서 올리셨군요. 어쩐지 해당 글의 조회수가 늘었더라니..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잘 쓸 걸 그랬어요. 그래봤자 더 나아진 수준은 아니겠지만요ㅠ 호.. 그나저나 저도 신기하네요. 영광입니다. 영광스러운 소식 알려주신 lalala_hana님께도 무한 감사를 드린다능. 말씀 안해주셨으면 모를 뻔 했네요. 고맙습니다. (--)(__)(--)
감사는 무슨무슨요- 슈삼화님 글이 좋으니께, 다 이런 결과가 있는거지욜.
저도 그 글을 통해서 슈삼화님을 알게 되었으니, 그 글이 참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는군요 ㅎㅎ
언제 기회가 되면 누구나 한번쯤은 호구짓을한다(가제) 내용의 단편영화를 같이만들어 봐요.
투자자들이 나오게 된다면- 아하하 ^-^
아 근데 진짜 그 영화 약간 코믹쪽인데 진지하게 만들어서 약간,그...
옴니버스 식으로 만들면 되게 재밌을 것 같아요. 단편영환데 옴니버스까지 ㅋㅋ
영화 쪽에는 문외한이라 ㅠ lalala_hana 님께서 감독을 해주세요. 저는 배우로 나가야겠군요. 개성있게(라고 쓰고 '못'이라고 읽는다) 생긴 배우들이 인기가 많잖아요. 감독님께서 벗으라면 벗겠... 아, 의욕이 앞섰군요. 죄송ㅋ
저 감독 잘 할수 있어요!! 저요저요!! 저요!
그리구 슈삼화님 배우 캐스팅 문제는,
슈삼화님께서 블로그에 증명사진을 올리는 날 !
그 사진을 보고 적극 검토해보도록 하겠습니다ㅋㅋㅋㅋㅋ
아, 의욕이 앞선 점은 높게 사겠어요!!!ㅋㅋㅋㅋㅋ
제가 블로그에 증명사진을 올리는 순간 엄청난 비난이 블로그에 쏟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바, 블라블라 블로그의 번영과 안녕을 위해서 참도록 하겠사와요. 안보시는 게 lalala_hana님의 식사시간에 도움이 되실테니 부디 이해를 해주시길.
걱정하지 마시구.. 증명사진 한 번만...
음, 농담이구요, 진지하게 여쭤보고 그런거 아니니까가 아니니까
저 종신보험 타기전에 슈삼화님 움짤이라도 꼭 보여주세요~! ㅋㅋ
네? 알유키링미 라구요? ㅎㅎ 장난맞아요^^ 그러니 걱정마시구,
영화 문제는 보류시킬게요- 굿나잇.
lalala_hana님도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전 친구들과 레프팅 고고싱!! ㅋ 앗흥!
즐거운 주말 보내셨는지 모르겠네요. 전 주말에 소리를 좀 질렀더니 목이 아파 죽겠어요 ㅠ
그리고... 저는 님을 그닥 호구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릴때였고 첫 연애 아닙니까.. 그리고 어떻게 하다가 예정도 없던 연애를 했던거고.. 굉장히 뭐랄까?? 순수해요 ㅎ
첫 연애가 아니었으니.. 호구 맞군요 ㅠ 지금은 그 때에 비하면 제 자신이 엄청나게 더러워진 걸(!) 느낍니다ㅋ
우리는 역시 친구였습니다.!!!!!
제가 이글루하면서 봤던 최고의 명문입니다.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
하지만, 세수하다가 콧구멍 찔린 적은 있어도 코피 날 정도는 아니었어요.
+ 힙합의 4대요소는 모자, 티, 바지, 운동화죠.ㅎ
게다가 세수하다가 콧구멍 찔린 적도 있으시다니!! 굉장한 공감대가 형성되는군요!!
+힙합의 4대요소에 대한 새로운 정의군요. 역시 힙합은 간지!ㅎ
진짜 화나지만 오늘 마지막으로 'ㅎㅎㅎㅎ' 라고 문자 보내는 것으로 종결했습니다.
ㅎㅎㅎㅎ라니.. 엄청 쿨하시군요!!ㅋ
그나저나 글 재미나게 잘 쓰시네요 ㅋㅋ
재미나게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
전 스카이 쪽이였나 봄 ㅋㅋㅋㅋ
예전에 힙합 관련 검색하다가 이 블로그에 왔던 기억이 있는데
여기가 거기였는진 카테고리 눌렀다가 오늘 처음 알았네요.
팬질을 하려고 해도 이건 뭐 활동이 너무 없어서 당췌 할 수가 없습니다. 귀차니즘 님도 힙합 좋아하시는군요?ㅎ 혹시 네이버에서 활동하고 계시는?ㅋ
볼 건 없지만 종종 구경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