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영화 보기 잡담

주말에 형님 집에 들러서 조카와 알콩달콩 놀다가 형님과 술을 한 잔 마시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남들은 나름 연휴라며 계획을 잡고 어디론가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이었지만 나는 특별한 약속이 없었고 개인적으로 처리해야 할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벼운 발걸음을 무겁게 돌려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시간이 늦어서 그런가.. 지하철역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지하철 안에는 사람들이 없더라. 한산한 지하철의 긴 의자 가운데에 앉아서 창문과 창문 사이의 공간에 머리를 대고 새로 산 CD의 음원을 들으면서 눈을 감고 있으니 어느새 집 부근 지하철역에 도착해 버렸다.

몇 개월 전 집 부근에 영화관이 생겼는데 심야영화도 하는 걸로 알고 있었다. 예전에도 혼자서 한 번 보러 갔었는데 내 취향의 영화가 없어서 그냥 발걸음을 돌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요즘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도가니'. 그래, 이 영화를 보고 집에 들어가는 거야! 사실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부터 속으로는 혼자서 영화를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조금 민망할 거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공연도 혼자서 보러 갔는 걸 뭐.

영화관에 들어가니 다들 일행이 있는 것 같다. 남녀커플이 제일 많은 것 같았고 20대 초반의 남성무리들 그리고 여성커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이미 예매를 마치고 의자에 앉아 상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갓 상경한 촌놈처럼 그들을 바라보다가 영화 예매기로 이동하였다. 내가 고향에 있을 때만 해도 극장 입구에서 "어른 2명이요!!"라고 말을 한 후 표를 끊고 들어갔었지ㅋ 자동화된 시스템 앞에서 피식 거리고 있는데 내 뒤에서 어떤 커플이 힐끗힐끗 보는 느낌이 들었다. 다른 예매기도 많은데 하필이면 왜 내 뒤에서..라는 느낌이 들어 재빨리 영화 예매버튼을 눌렀다. 영화선택은 '도가니'로.

좌석을 보니 스크린 정면으로 좌우측에 3인석으로 좌석이 배치되어 있고 중간에는 길게 좌석이 배치되어 있다. 하지만 빈 좌석이 거의 없다. 110석인가 되었던 것 같았는데 13석 정도의 자리가 남아있었다. 그것도 중간에 띄엄 띄엄. 으으.. 커플들 옆에서 영화를 봐야 하다니.. 제발 쪽쪽거리진 말아줘 ㅠ 하지만 어쩌겠는가. 3인석으로 좌석이 배치된 곳에 통로쪽 자리가 있어서 그쪽으로 예매를 하였다.

영화 시작까지 20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콜라를 한 잔 마시고 싶어졌다. 아마도 형님 집에서 마신 술 때문에 갈증이 났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맥주를 마시고 싶었는데 맥주를 마시면서 술냄새를 풍기기도 좀 그렇고.. 화장실도 자주 들락날락 거려야 하니까.. 그냥 콜라를 먹기로 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기 전에 화장실은 필수코스. 화장실에 먼저가서 물을 빼낸 후 콜라를 중간사이즈로 하나 샀다. 2,000원. 콜라값이 이렇게 비쌌었나? 평소에 콜라를 먹지 않으니 그냥 그러려니 하며 영화관 안으로 들어갔다.



두둥!



영화 시작 10분 전이라서 그런가? 자리가 꽤 많이 비어 있었다. 어둠을 뚫고 희미한 불빛을 따라 지정된 좌석에 앉았다. 대기업 광고 몇 편, 굿다운로더 캠페인, 해외 영화 예고편, 극장 예절 및 비상구에 대한 설명 영상이 나오는 중에도 사람들이 꾸준히 들어왔다. 영화는 봐야겠지만 예매를 못한 무리들은 급하게 표를 구했는지 다같이 들어왔다가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면서 가벼운 인사를 하고 헤어지기도 했다. 그들의 모습을 보니 '어라? 저들도 나랑 다를 게 없구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다양한 영상들과 함께 사람들이 다 자리를 잡고 얼마 되지 않아 영화가 시작되었다.

도가니 감상평 -스포일러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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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를 쓸 생각은 없으나, 영화에 대한 감상을 말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내용을 말하게 될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결정적 장면에 대한 내용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서 스포일러 있다고 적었다. 나야 뭐가 결정적 장면인지는 모르니까 사전 방지용으로다가.

영화를 보기 전에는 가슴이 답답해지고 불편해지는 영화라고 하길래 걱정을 많이 했는데 난 생각보다 답답하거나 불편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유쾌하게 봤다는 건 아니고.. 이미 다른 영화들에서도 이런 비정상적인(하지만 실제로 그러한) 범죄를 일으키는 사람이나 그러한 사회 현상에 대해서 본 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장애가 있는 사람.. 게다가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폭력을 일삼고 변태적인 성행위를 하는 모습들은 심히 불쾌했다. 또한 죄를 짓고도 적정한 수준의 처벌도 받지 않는 사회 구조.. 그 죄에 대해서 전혀 뉘우치지도 못하는 금수와 같은 사람과 함께 이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불안감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난 이런 사회적 문제도 문제지만 강인호(공유)에 집중해서 영화를 본 것 같다. 강인호의 고민에 충분히 공감하였으나 그의 선택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나도 저런 경우가 온다면 강인호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대상으로한 외압으로부터는 어느 정도 견뎌낼 수는 있겠지만 그 외압이 나의 가족에게 영향을 미친다면..(뭐.. 나를 대상으로 하는 외압 자체가 가족에게 영향을 미치겠지만.) 정말 쉽지 않은.. 매우 어려운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강인호처럼 대처하고 행동할 수 있는 인격을 가져야겠다고 느꼈다. 물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주변 사람들(강인호의 어머니처럼)의 시선과 지지가 중요할 것이다. 강인호의 행동을 보면서 주변을 좀 돌아봐야겠다고 느꼈고, 이런 인식 뿐만 아니라 행동이나 실천의 필요성과 중요성도 느꼈다.

족벌체제, 뒷돈(부당거래), 전관예우, 아동 성폭력, 장애인 인권.. 별로 새롭지 않은 이야기 아닌가? 이미 알고 있었고.. 늘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나 개선안을 마련해야 하는 것들이라고 생각하던 것이다. 중요한 건 대중들이 사회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 '도가니'라는 영화로 점화되어 사회적 쟁점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 것에 대해서 쟁점이 되었을 때 제대로 해결방안을 모색하여 정부의 정책마련까지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것.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냄비처럼 쉽게 뜨거워졌다가 짜게 식을 게 아니라. 조금 다르긴 하지만 '우생순' 이후 비인기스포츠 활성화에 대해서 발끈한 이후.. 지금은 과연 어떠한 스포츠가 관심받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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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난 후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좀 기다렸다. 평소 같으면 일행과 함께 우르르 나가면서 사람들에 치였겠지만. 올라가는 자막을 보면서 영화의 느낌을 한 번 정리 해봤던 것 같다. 물론 정리는 안됐다ㅠ 사람들이 어느 정도 빠져나갔다고 느꼈을 때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영화관을 나왔다. 혼자서 영화 보기.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좋다. 일행과 함께 영화를 보는 것보다 더욱 영화에 집중할 수 있는 것 같다.

영화관 건물 바깥으로 나오니 바깥이 꽤 쌀쌀했다. 이제 겨울인가. 벌써부터 난방비 걱정이 됐다.

그리고 자꾸 혼자가 편해져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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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Jes 2011/10/05 13:55 # 답글

    모두들 그렇게 게... 아니 솔로가...
  • 슈3花 2011/10/05 16:52 #

    Jes // 게.. 게이.. 게이머가 되는 거지요?!
  • 지소낭자 2011/10/05 15:47 # 답글

    혼자 다니는 버릇이 들면 그게 자꾸 편해져서 큰일입니다(....)
    저도 학교에서 문화행사라고 종종 공연이 있는데 그것도 계속 혼자 가게 되더라구요.
    사실 누구 기다릴 필요도 없고, 자리도 선착순 배부인데 혼자 가면 늦어도 앞자리에 하나씩 빈 자리를 주기 때문에(....) 좋은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더군요...하하;
  • 슈3花 2011/10/05 17:19 #

    지소낭자 // 저만 그런 게 아니었군요. 왜 사람들이 자취 자취 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혼자가 편해욧!! 물론 자취를 신물나게 한 제 측근 중 한 분은 자취생활이 지겨워서 결혼을 하기도 했지만요 ㅎㄷㄷ

    지소낭자님께서 말씀하신 그런 장점도 있군욧!! 우왕ㅋ굳ㅋ 괜찮네요^^

    그런데.. 저는 혼자 다니는 게 익숙해지다 보니 예전보다 개인주의적 인간이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네요 ㅠ 지인 중 한 분은 저보고 변했다고 까지 ㅠ
  • 에이프릴 2011/10/06 10:11 # 답글

    여자친구분이랑 보고 오셔요....ㅋㅋㅋㅋㅋㅋㅋ
  • 슈3花 2011/10/06 10:17 #

    에이프릴 // 그게 좀.. 말씀드리기가 좀.. 요즘 좀.. 아니, 요즘이 아니라 좀..
  • 에이프릴 2011/10/06 11:17 #

    헉 제가 아픈데 건드린건가요ㅠ 뎨동합니다..
  • 슈3花 2011/10/06 13:12 #

    에이프릴 // 아니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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