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영화 보기
주말이면 뭔가 신나는 일이 있을 것만 같다. 이번 주말에는 친구들과의 모임 약속이 있었다. 고향에 모여 민박 잡고 고기 구워 먹으면서 술이나 뽀지게 마시자는 약속. 하지만 나는 불참하겠다고 통보했다. 고향까지 내려가기 위한 차비 및 참석 회비 등을 고려했을 때 향후 생활고에 부딪힐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좀 남아있긴 했다.
금요일 오전에 문자가 도착했다.
'슈3花님, 고향행 여행권 쿠폰 이벤트에 당첨되셨습니다. 차비만 가지고 내려 오십시요.'
모임을 주최한 친구의 문자였다. 내 딱한 처지를 알기 때문에 장난스럽게 모임 참석을 유도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정중히 거절했다.
'어머 씨발. 신청도 안한 이벤트에 당첨이 되고 지랄이네요. 담당자님 졸라 신기하네요. 가고 싶지만 아쉽게도 쿠폰을 사용하지 못할 것 같네요. 여행권은 담당자님 여친님께 양도하고 싶네요. 안가는 게 아니라 못가는 거니까 염장 그만 지르고 수고하세요'
친구들 중에서 돈은 제일 많이 벌고 차도 제일 좋은 녀석이지만 여친이 없다는 점을 공략하면서 문자를 보냈다. 답장이 왔다.
'그러셨군요. 그런데 내부 시스템 오류가 발생하였나 봅니다. 다른 분께서 당첨이 되신 거네요. 사과의 의미로 가운데 손가락을 보내드리오니 주말에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아무튼 그렇게 취소한 주말 약속. 자의로 취소를 한 것이지만 병신같은 내 현실에 씁쓸함이 밀려왔다. 더 열받는 건 신나는 금요일 밤임에도 불구하고 원래 퇴근시간보다 무려 2시간이나 늦게 퇴근을 하고 말았다는 사실. 특별한 약속도 없지만 괜히 열받아 하며 부리나케 집에 도착. 집에 와도 딱히 할 일이 없었다. 텅 빈 방안에서 멍하니 있다가 컴퓨터를 켰다.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를 두 판 정도 하다가 멈추고 웹서핑을 하였다. 자주 들어가서 눈팅하고 있는 성인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눈팅을 하다가 배우 최민식, 하정우 주연의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에 대한 후기 글이 보여 클릭을 해보았다.
최민식의 연기에 대한 호평일색이다. 하정우의 연기도 무난했다는 이야기도 보이고. 중요한 건 영화가 재미있고 볼만하다는 의견이 많다는 것. 문득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포기했다.
'돈 없어서 친구들 모임도 불참한 놈이 영화는 무슨..'
그래도 늘 미련이 남는다. 볼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합리화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친구들 안만나러 갔으니까.. 추억은 없어졌지만 돈은 굳었잖아. 그럼 그 굳은 돈을 좀 써도 되는 거 아냐? 영화 한 편 보면 10,000원이면 되잖아.'
이런 병신같은 합리화 때문에 내가 지금 이 지경인가?ㅋ 암튼 위와 같은 말도 안되는 합리화에 '친구들은 재미있게 노는데 나는 방구석에서 야동이나 보면서 있기는 싫다'는 생각이 복합적으로 뒤엉키기 시작하자 결심은 확고해졌다.
'보러 가야지.'
결심을 하고 나니 비용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러다가 이내 조조할인이 떠올랐다.
이문세(feat. 이적) - 조조할인
아직도 생각나요 그 아침 햇살 속에 수줍에 웃고 있는 그 모습이♬
이문세의 노래 '조조할인'에서는 '돈 500원이 어디냐'라며 할인 금액을 제시하고 있지만 지금은 약 4,000원이 할인 된다는 사실. 뭐.. 이문세의 노래가 이야기한 시점의 물가와 지금의 물가를 고려한다면 비슷하려나?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는 '할인' 그 자체가 중요한 거겠지.
'그래.. 한 편에 5,000원이면 부담 없지 뭐'
예매 사이트에 가서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영화가 조조 영화로 상영하는지 확인을 해보니 다행히도 조조할인이 되더라. 상영시간을 확인하니 아침 9시 30분. 내 방 한 구석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30분. 밤늦게까지 프리모(DJ premier)의 비트를 쫓아 유투브를 헤매다 보니 나도 모르게 시간이 이렇게 지나 있었다. (그래도 프리모의 비트 중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킬링 트랙을 발견한 건 다행인 듯ㅋ) 영화 시작 시간까지 약 6시간. 얼른 자리에 누워 알람을 맞추고 잠자리에 들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눈을 뜨니 8시 30분. 바보같이 알람을 진동으로 맞춰놓고 잤다. 8시에 알람을 맞춰놨는데.. 그래도 10분 간격으로 알람을 맞춰놔서 진동 울리는 소리라도 들은 것 같다. 몸을 바로 일으키지 못하고 뜨끈한 전기 장판에 등을 비비며 나갈까 말까 고민을 하였다. 분명히 잠들기 전에는 나갈 것이라고 결심해놓고.. 나란 남자, 한심한 남자. 누워서 한 5분정도 고민을 하다가 자리에서 벌떡 몸을 일으켜 외출 준비를 하였다.
샤워를 하고 나와 몸을 닦고 머리를 말린 후 왁스를 바르려고 하다가 '내가 왜?'라고 자문한 후 모자를 눌러쓰고 대충 이옷 저옷을 껴 입은 후에 바깥으로 나왔다. 바람이 세차게 분다. 춥다.
'아오, 그냥 방구석에서 TV나 보고 있을 걸'
하지만 이미 집을 나왔으니 계획을 실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로 한 정거장 정도 되는 거리라 평소같으면 걸어서 갔겠지만 날씨가 너무 추웠다. 그래도 돈이 없어서 걸었다ㅠ
영화관에 도착했다. 예전에 한 번 영화를 보러 온 적이 있었기 때문에 '혼자'이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은 별로 들지 않았다. 다만 좌석을 지정하려는데 커플 사이에 앉아야 한다는 건 아무래도 좀. 자동발매기를 통해 영화표를 끊었다.

조조ㅋ5,000원ㅋ굳ㅋ
의외로 영화관이 북적거리고 해당 영화를 예매한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다. 조조 영화가 처음인 나는 한가로이 영화를 감상할 것으로 판단했던 예상이 어긋나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원래 조조 영화를 사람들이 많이 보는 편인가? 이 영화가 인기가 좋아서 그런가? 경기가 안좋아서 그런가? 어젯밤에 근처 모텔에서 자고 아침부터 영화보러 온 건가?'
뻘스러운 생각을 하고 있으니 어느새 영화 시작 시간이 다가왔다. 화장실에 가서 물을 빼고 나와 상영관으로 향했다. 영화표를 확인해주는 아가씨가 예쁘다. 표를 확인하는 그 예쁜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표를 확인 후 설명을 해주기 위해서 나에게 고개를 다시 돌리는 순간 나도 재빨리 빤히 바라보던 시선을 돌렸다.
"들어가셔서 바로 오른쪽입니다."
가벼운 목례와 함께 '앉아서 확인해줘도 될텐데 저렇게 계속 서있네. 다리 붓겠다' 라는 생각을 하며 해당 관으로 들어갔다. 역시 혼자서 다니면 오지랖 쩐다.
상영관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별로 없다. 하긴 영화 시작 10분 전에 바로 입장했으니 사람들이 없을 수 밖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으니 사람들이 하나 둘씩 들어선다. 어느새 자리가 거의 빈틈없이 채워졌다. 광고가 몇 편 나온다. 한효주 예쁘다. 그렇게 광고를 보고 있다보니 영화가 시작하였다. 내 옆좌석의 커플은 영화가 시작하고 바로 입장 후에 착석하였다. 모텔에서 출발했다면 아무래도 모닝떡을 한 번 치고 나왔기 때문이겠지.
영화감상 보기(클릭) -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스포 있음)
영화가 끝이 나자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우르르 나갔다. 시계를 보니 낮 11시 50분 정도? 아무래도 시간이 시간이니 점심을 먹어야 했겠지. 남들은 영화감상을 끝으로 본격적인 데이트가 시작되겠지만 나는 특별한 약속이 없기에 발걸음을 집으로 돌렸다. 집으로 가는 길에 식당에 들어가서 뭐라도 먹고 들어가려고 하다가 집에 밑반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집에 들어왔다.
며칠 간 정신이 없어서 청소를 하지 못했던 내 방.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이불도 털고 바닥도 쓸고 걸레질도 하면서 방청소를 좀 했다. 아직은 차가운 공기가 방 안을 채웠지만 뭔가 개운함이 느껴졌다. 청소를 마치고 나니 오후 1시 30분. 평소같으면 이즈음에 일어났겠지만 아침부터 이것저것 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하루를 꽉차게.. 알차게 보내는 기분.
근데 점심먹고 3시30분부터 6시30까지 낮잠을 쳐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덧글
쭈~~~욱 하세요!! 대한민국의 모든 음식점을 담으세요 ㅎ
저두 조조 혼자 보러간적있는데...
왜 사람들은.. 그렇게 일찍 둘이서 만나서... 영화보러 가는건가요...
굳이 둘이서...
저는 조조를 보러가겠다고 다짐은 했었는데.. 아침잠이 언젠가부터 좀 많아져서요 ㅎ
아직 자신 없어서 실행 못했습니다.
존경합니다.
막상 가셔서 예매하시고 나면 모든 게 편안해져요 ㅎ
손놓은지 꽤 되었는데 다시 시작하려니 요즘 하도 신캐릭이 많이나와서 말입니다ㅋ
저도 취업준비생시절 가끔 기분전환겸 혼자 조조를 보고는 했었는데,
영화관람에 대한 집중력은 최고랄까요ㅎㅎ
취업준비생시절.. 으악!! 시기는 다르지만 그만큼 시궁창인 현실. 저도 가끔은 기분전환을 위해서 조조를 봐야겠군요. 막상 보러 가면 안졸린데 보고 나서 집에 도착하면 잠이 쏟아지더라고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