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면 꼭 후회를 하지 잡담

번쩍 눈이 떠진다. 어딘가에 누워있다.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두통을 동반한 숙취가 몰려온다.

'으..으..'

다시 누워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본다. 오전 9시. 평일이었으면 지각이구나.. 지각을 면했다는 사실에 안도를 하며 몸을 다시 일으킨다. 어제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자고 있다. 자면서 뒤척였는지 옷이 모두 구겨져 있어서 드라이를 맡겨야 할 것 같다.

소지품을 확인한다. 가방? 있다. 휴대전화? 있다. 지갑? 있다. 지갑 속 카드? 있...는데, 꺼냈다가 대충 꼽아놓은 형상이다.

'어제.. 내가 뭔가를 결제했었나?'

불안감이 몰려온다. 허겁지겁 휴대전화를 켜서 통화목록과 메세지를 확인한다. 통화목록을 보니 다행히도 술먹고 전화를 해서 진상을 부린 것 같진 않다. 하지만 1588-****이라는 수신 메세지 번호를 보고 내가 결제를 하긴 했구나 라는 걸 인지한다. 메세지를 확인하니 다음과 같은 내용의 메세지가 도착해 있다.

[카드 승인 : 450,000원 / OO카드 OOO님 *월*일 **시**분 / OOOO(매장명)]

오마이갇. 사만오천 원도 아닌.. 사십오만 원. 눈을 씻고 다시 봐도 사십오만 원. 근데 OOOO이 어디지? 뭔가 낯선 이름인데..

'어제 내가 도대체 뭘 한 거지?'

멘붕이 시작된다. 그리고 어제의 기억을 되짚어 본다. 어제는 분명히 오랜만에 친한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신 게 전부인데.. 함께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지 않을 것 같은데 이내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야 어제 잘 들어갔냐?"
"아, 대가리 아파 뒤지겠다 넌 어딘데?"
"나 집이지.. 나도 대가리 깨질 것 같어... 우리 어제 얼마나 마신 거냐?
"몰라.. 7병까지는 기억 나는데 그 이후로는 잘 모르겠는데?"
"어후.. 시발. 그러니까 이렇게 맛탱이가 갔지 ㅠ 야 근데 어제 계산 누가 했냐?"
"계산? 1차는 내가 내고.. 2차는 모르겠는데? 잠시만"

1차는 친구가 냈다. 하긴 1차에서 삼겹살에 소주 몇 병 마신 게 돈이 그렇게 많이 나올리가 없지. 근데 어제 2차까지 갔었구나. 생각을 하고 있는데 친구가 다시 말을 잇는다.

"2차는 내가 안낸 것 같은데. 너가 낸 거 아냐?"
"그래? 야, 어제 2차 어딜 갔는데 돈이 이렇게 많이 나왔냐?
"2차? 꼬치전문점가서 간단하게 맥주 마시지 않았냐?"
"으엥? 뭐여.. 그런데 돈이 왜이렇게 많이 나왔지? 잠시만"

난 재빨리 지갑을 열어 현금을 확인 한다. 천 원짜리 몇 장밖에 남지 않았다. 현금으로 계산했나 보구나.

"아.. 내가 현금으로 냈나보네"
"그랬나보지 뭐.. 아우 죽겠다. 근데 맥주 간단히 마신 게 돈이 많이 나왔어?"
"아니.. 어제 결제한 내역보니까 사십오만 원 찍혀있던데 이건 뭐냐? 어제 3차도 갔냐?"
"3차? 아, 시발 거기 그렇게 많이 나왔어?"

아, 3차를 갔었구나. 근데 기억이 안난다. 이런 병신.

"거기? 거기가 어딘데?"
"OOOO. 니네 집에서 택시타고 조금만 가면 나오는 거기."
"아~ 거기 갔었냐? 시발. 만날 간다 간다 말만 하더니 어제 드디어 질렀구먼 ㅋㅋㅋㅋ 아놔 시발 기억도 안나는데 쌩돈 사십만 원 때려박게 생겼네 시발 ㅋ
"어제 내가 펌프질 조금 했더니 바로 콜 하던데? ㅋ 나도 어제 맛탱이 가서 기억은 잘 안나는데 거기 가서 놀다가 잠깐 정신 차려보니 니도 아주 미친 개새끼처럼 놀던데?ㅋ"
"이런 시발 ㅋㅋ 기억도 안나는 거. 어제 나 뭐하디?"
"니 어제ㅋ 들어가더니 바로..."

그렇게 어제 내가 뭔 개짓거리를 했는지 친구를 통해서 듣게 되었다. 당사자이지만 제3자가 된 입장에서 내 이야기를 듣는 건 민망하고 두렵다. 난 친구의 목격담을 들으면서 '진짜? 진짜?'라고 되묻고 친구놈은 '그래 이 또라이 새끼야'라고 대답한다.

"아, 시발 돈도 없는데 좆됐네ㅋㅋ 아우 시발 거길 왜 갔디야"
"몰라 나도. 가고 싶었으니 갔겠지. 가서 잘 놀았으면 된거여 시발ㅋ"
"그려ㅋ 암튼 푹 쉬시게나"
"그려ㅋ 수고염"

큰사고 없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지만 그것도 잠시. 돈을 때려 박아야 한다는 사실에 씁쓸함이 밀려온다. 앞으로 적지 않은 이 비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고민을 하다가 쓰린 속을 붙잡고 다시 드러눕는다. 도저히 속이 쓰려서 안되겠다. 짬뽕이나 육개장을 시켜먹으려다가 앞으로 들이닥칠 금전적 후폭풍에 대한 두려움으로 라면을 끓여 먹는다.

그때 메세지가 하나 도착한다.

[25만원 입금했음]

고맙다, 친구야ㅠ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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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라블라 블로그 : 정~말 오랜만에 방문한 치과(스케일링을 처음 받아 본) 2012-03-09 10:33:52 #

    ... '놔두면 병된다'는 옛 선조 어르신들의 말씀이 떠올라 다소 통장 잔고에 출혈이 있더라도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친구와 함께 술김에 내질렀던 음주가무 비용이 재차 아쉽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가장 중요한 돈도 없어ㅠ다음 날. 직장 동료에서 회사 부근의 좋은 치과를 추천 받은 후 상사에게 병원을 좀 다녀오겠다고 하 ... more

덧글

  • 601n829 2012/03/03 13:52 # 답글

    (펌)을 보고 일단 안도의 한숨을...
  • 슈3花 2012/03/03 16:51 #

    601n829 // 과연 어디까지가 펌일까요?? ㅠㅠ
  • 크르 2012/03/03 15:29 # 답글

    우선 글 보고 헉!!소리 냈다가 펌이라는 소리를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뿜은 것을 이야기드리고...

    ...돈 많이 쓴 것 말고는 공감되는 이야기네요. 진짜 아침에 지갑이랑 이런저런 소지품 확인하고, 대체 내가 뭘 했는지 궁금해하며 친구들에게 누를 끼쳤을까봐 물어보지도 못하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으아악ㅋㅋㅋㅋㅋㅋ
  • 슈3花 2012/03/03 16:51 #

    크르 // 아침에 후회와 고민에 빠지는 건 만취한 자들이 모두 겪는 일인가 봅니다 ㅎ
  • 귀차니즘 2012/03/03 15:39 # 삭제 답글

    본인 글이 아니군요? ㅋㅋㅋㅋㅋ
    근데 저 친구 누군진 몰라도 사람이네요 참 좋은 친구네
  • 슈3花 2012/03/03 16:52 #

    귀차니즘 // 제 글이 아니라고 생각해주세요ㅠ
    1/n보다 더욱 지불해주는 멋진 친구ㅠ
  • 레드피쉬 2012/03/03 15:49 # 답글

    역시 최대의 반전은 펌
  • 슈3花 2012/03/03 16:52 #

    레드피쉬 // 펌이 반전이라면?ㅎㄷㄷ
  • 레드피쉬 2012/03/03 17:08 #

    제덧글이 반전이라면?
  • 슈3花 2012/03/03 19:10 #

    레드피쉬 // 반전에 반전!!
  • 2012/03/04 02:0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슈3花 2012/03/04 03:30 #

    비공개 // 술을 안드시는군요? 저는 술을 잘 먹지는 못하지만 자주 마셔요. 근데 요즘도 술 강요하고 그러나요? 이런 몹쓸.. 하지만 저도 가끔은..

    아, 위와 같은 상황이면 정말 멘붕에 멘붕을 거듭합니다. 후폭풍도 무시 못하고요 ㅠ 아 어떡해 ㅠ
  • 사람해요 2012/03/04 18:07 # 답글

    헐...그가 나고 내가 그인듯한 착각이...
  • 슈3花 2012/03/04 20:01 #

    사람해요 // 분명한 건 저만 겪은 경험이 아닌 듯 싶습니다 ㅠ
  • acrobat 2012/03/05 01:02 # 답글

    엊그제 220,000이 결제된 영수증을 보고 땅을 치고 후회했었드랬죠.... 이번주 조카 돌반지 해줘야하는대 딱 저만큼 돈 들텐대말이죠... ㅜㅜ
  • 슈3花 2012/03/05 10:17 #

    acrobat // 저도 이번달 둘째 조카가 태어날 것 같아서 비용이 어느정도 소요될 것 같습니다 ㅠ 내가 왜그랬지?라며 땅을 치고 후회를 ㅠ 뭔가.. 동지가 생긴 기분이네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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