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특별했던 나의 일요일 잡담

주말에 공부를 하기 위해서 도서관에 가야했다. 하지만 난 전날밤 웹서핑을 하느라 새벽 4시에 잠들었다. 눈을 떴다. 시간은 어느덧 낮 12시를 가리키고 있다. 잠은 조금 잤지만 늦잠을 자서 그런지 의외로 쉽게 눈이 떠진다. 조용한 방에는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만 가득하다. 적막을 깨고자 TV를 켰다. 그리고 손을 씻은 후 쌀을 씻어 밥솥에 올리고 김치스팸찌개를 끓였다.

밥이 다 될 때까지 게임이나 한 판 해야겠다 싶어서 컴퓨터를 켰다. 켜놓은 TV를 꺼도 되지만 음소거 시켜 놓는다. 프리스타일2를 할까? 아니면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할까? 프리스타일2는 만렙을 찍은 후 특별한 업데이트가 없어서 다소 흥미를 잃었다. 그렇다면 리그 오브 레전드? 최근 인쇄를 하기 위해 PC방에 갔다가 거기에서 돌아가고 있는 게임의 50%정도가 리그 오브 레전드였던 게 기억난다.

리그 오브 레전드에 접속한다. 매일 컴퓨터를 상대로 게임을 했지만 오늘은 왠지 사람들과 대결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을 찾아 들어갔는데 바로 강퇴. 게임에서도 날 반기는 이가 없구나 ㅠ 다시 컴퓨터를 상대로 게임을 한다. 늘 '초급'만 해왔는데 오늘은 '중급'에 도전한다. 어라? 컴퓨터가 졸라 쎄다. 처음으로 '항복'을 위한 투표를 해봤다. 그냥 '초급'해서 기분 좋게 게임 마무리 할 걸.. 밥솥에서 '딱!'하는 소리('쿠쿠하세요~♬'는 지랄하고)로 밥이 다 되었다는 소식을 알려주었기에 아쉽지만 컴퓨터 책상에서 내려 앉는다.

밥솥을 여니 가지런한 밥들이 뽀얀 김을 뿜으며 날 반긴다. 아, 밥냄새 좋다. 밥솥 안을 주걱으로 휘휘 저은 후 다시 밥솥을 닫는다. 1인용 식탁을 펴서 밑반찬을 펼쳐 놓는다. 얼마 전에 고향집에 다녀올 때 싸가지고 온 밑반찬들이 식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걸 보니 뭔가 사람처럼 산다는 느낌이 든다. 밑반찬이 없을 때 인기만점이었던 도시락용 김을 꺼내려다 다음을 기약하며 집어 넣는다. 아까 전에 끓인 김치스팸찌개를 가운데에 놓고 밥을 한 공기 퍼담은 후 식탁에 자리 한다.

음소거 시켰던 TV의 볼륨을 높이고 채널을 돌려 오늘 식사상대를 물색한다. 아, 재미없다. 재방송, 또 재방송. 정규채널을 사랑하는 나라도 지긋지긋한 재방송은 보고 싶지 않다. 더군더나 드라마를 보지 않는 나에게 주말에 방송되는 드라마 재방송은 전파낭비라는 생각이 들기 까지 한다. 케이블로 채널을 돌려서 연예인 신변잡기 차트쇼 같은 걸 틀어놓고 식사를 시작한다.

상하기 쉬운 음식을 중심으로 식사를 해결한다. 못 먹고 버리는 것 보다 속상한 일은 없다. 더군더나 어머니께서 소중히 만들어주신 음식인데 이걸 어찌 버린단 말인가. 상하기 전에 무조건 다 쳐먹는 거다. 내가 끓인 얼큰한 김치스팸찌개도 맛이 일품이다. 김치빨, 스팸빨이긴 하지만.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웠는데 히딩크가 빙의 한다. 다시 밥솥으로 가서 한 공기를 더 퍼담는다. 많이 담은 것 같다. 성욕과 식욕은 비례한다고 하던데.. 많이 담는 게 당연하다. 밥 공기의 바닥이 보일 때는 배가 약간 부르지만 꾸역꾸역 다 먹는다. 이런 게 레알 잉여?

상을 대충 치우고 창문을 열어 바깥 날씨를 확인한다. 날씨 좋다. 놀러가고 싶다. 하지만 오늘은 도서관에 가야한다는 사실에 잠깐 낙심한다. 도서관으로 바로 갈 생각을 잠깐했다가 다시 컴퓨터에 앉아서 아까 패배한 '중급' 컴퓨터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다시 게임에 접속한다. 그때 울리는 전화 한 통. 춘천에 살고 있는 친구다. 바깥의 화창한 날씨를 바라보며 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나 : 오~ 무슨 일이야.
친구 : 학원 왔다가 날씨가 졸라 좋아서 전화 한 통화 해봤지.
나 : 오늘 날씨 졸라 좋다, 시발. 오늘 같이 날씨 좋은 날 왜 하필 고추 달린 나한테 전화를 하고 지랄이냐?
친구 : 그러게나 말이다. 여자가 없으니까 고추달린 너한테 전화를 하지. 근데 뭐하고 있었어?
나 : 밥 먹고 게임하고 있었지
친구 : 뭐? 프리2, 리그 오브 레전드?
나 : 리그 오브 레전드
친구 : 아.. 그거 졸라 어렵던데..
나 : 나도 어차피 허접이야ㅋ 근데 진짜 날씨 좋아서 전화했냐?
친구 : 앙.. 그리고 뭐 좀 요즘 바빠질 것 같아서.
나 : 뭔데 거들먹거리고 지랄이야.
친구 : 형아가 여자한테 번호 따였잖냐.

워낙 잘생긴 친구이라 놀랄만한 일은 아니지만 나이 30줄에 여자한테 번호 따이는 일이 주변에 흔치 않기에 다소 놀랐다. 그리고 따였다는 표현에 번호만 따였는지.. 아니면 다른 것도 따였는지 궁금하여 계속해서 관련된 대화를 이어 나갔다.

나 : 어라? 여자 없다면서?! 이 개새끼 어디서 구라를 풀어.
친구 : ㅋㅋㅋ 번호 따였다고 해서 그게 여자가 있는 거냐?
나 : 이새끼 자랑하려고 전화했구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친구 : 아놔~ 나 아직 안죽었네~ㅋㅋㅋㅋㅋㅋㅋㅋ
나 : 한 번 만나봐. 너 여친도 없잖어 ㅋㅋㅋ
친구 : 그 정도는 아니야 ㅋㅋ
나 : 예쁘냐?ㅋ
친구 : 별로야.
나 : 그래.

다소 업됐던 대화 분위기는 급속도로 냉각되어 갔고 우리는 서로의 건승을 기원하며 전화를 마무리 지었다.

전화를 끊고 다시 리그 오브 레전드 '중급'에 도전.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님들 저 초보만 하다 왔음요. 잘하시는 분께서 이렇게 저렇게 지시도 좀 해주시고 해주세요'라고 채팅창에 띄우자 '중급 X밥임'이라는 답변이. 다들 잘하는 사람이었는지 '중급'을 깼다. 나는 신나게 발렸지만 다른 유저들이 잘해주어 승 to the 리.

컴퓨터를 끄고 이제 슬슬 도서관에 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 하지만 늘 봐오던 야동을 안 보고 갈 수는 없지 않은가? 괜히 도서관 갔는데 떡치고 싶어지면 안되지 않은가?! 야동을 보기 위한 말도 안되는 핑계를 만들던 것도 잠시. 내가 내 자신한테 거짓을 말할 필요가 없기에 즉, 그냥 보고 싶기에 늘 가던 사이트에서 정보를 습득하여 단편 3편, 장편 2편.. 총 5편의 작품을 감상하였다. (펌)

그러고보니 씻지도 않았네? 화장실에 들어가 씻을 준비를 했다. 머리는 미친년처럼 헝클어져 있고 주말내내 자르지 않은 수염이 숭숭 나 있어서 안그래도 초췌하게 보이는 얼굴을 더욱 없어 보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어차피 월요일이면 해야 하는 면도이기에 굳이 오늘 면도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샤워를 마치고 나왔는데 상쾌한 기분 대신 김치스팸찌개 냄새가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창문을 열고 공기청정제를 칙칙 뿌렸다.

열린 창문을 통해 바깥에서 나를 훔쳐볼까봐 얼른 팬티를 입었다. 알몸을 누가 본다고 해도 고추가 크니까 큰 상관이 없는데 혹시라도 도촬로 인하여 내 삶이 피곤해지는 건 싫었기 때문이다. 공부하기 편한 옷으로 고른 후 일교차가 심할 수 있기에 겉옷을 두꺼운 놈으로 골랐다. 왁스로 관리를 하지 않으면 우스꽝스러운 헤어스타일이기에 남들의 시선을 고려하여 모자를 썼다. 도서관에 가서 봐야할 것들과 필기도구 등을 조그마한 가방에 집어 넣은 채 한 쪽 어깨에 걸쳤다.

바깥에 나오니 사람들이 죄다 봄옷을 입고 있다. 바람은 아직 차갑구먼. 나는 아직 춥다는 느낌이 들어서 모자 위에 후드까지 뒤집어 썼다. 학교 앞으로 가니 파릇파릇한 대학생들의 싱그러움이 느껴진다. 예전에는 나와 같이 술을 먹던 선후배였지만 지금은 그냥 어린 동생들일 뿐. 쏜 살같은 인생이 괜히 원망스럽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된다. '내 인생은 왜 내리막만 있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도서관에 입성한다.

출입증 카드를 찍고 도서관으로 들어가 마땅한 자리를 훑어본다. 학기 초라서 그런지 신입생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두꺼운 책을 앞에 여러 권 쌓아 두고 공부에 매진하는 고시생 간지의 학생도 보이고, 2학년 공대 재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학생이 알 수 없는 글자들이 새겨진 책들을 펼쳐놓고 계산기를 신나게 두들기고 있다. 물론 커플이 사랑과 공부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 알콩달콩 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자리에 앉아 내가 공부해야 할 것들을 펼쳤다. 공부에 매진한다. 1시간 30분 정도의 간격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도서실을 나온 후 스트레칭을 한다.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면서 깜깜한 바깥을 보다가 문득 '언제부터 도서관이 독서실이 되었는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라는 생각을 하다가 지금 도서관을 독서실로 사용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고 모순된 행동과 생각에 픽 웃는다.

공부에는 목표가 있긴 하지만 끝은 없다. 더 하면 더 할수록 좋은 것이지. 하지만 나는 '이 정도면 됐다'며 안일하게도 나름의 목표달성에 흐뭇해 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일어나려는데 경비아저씨께서 뭐라 뭐라 하신다. 그 소리를 듣더니 도서실에서 함께 공부하던 사람들이 주섬주섬 짐을 싼다. 아, 이용시간이 끝났구나.

아까 화장실에서 고추를 매만지며 확인하긴 했지만 바깥에 나오니 칠흙같은 밤이다. 기온이 더 내려갔는지 더 쌀쌀해졌다. 집에서 나올 때 따뜻하게 입고 나오길 잘한 것 같다. 집에서 밝을 때 나와서 도서관에서 공부한 후 어두울 때 집에 들어간다는 사실은 괜한 뿌듯함을 일으킨다. 아직 해야 할 것들이 많지만 나름 열심히 했다며 자위를 하며 집으로 복귀한다. 도서관을 올 때 왔던 길을 그대로 거슬러 집으로 간다. 어두운 골목길이 예전같으면 참 무서웠는데 요즘은 구석구석이 궁금해서 두리번 거리면서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누가 보면 도둑인줄 알겠네.

집에 도착해서 TV를 켜니 재미있는 프로그램은 이미 다 끝나버렸다. 컴퓨터를 켜려다 한 번 잡으면 시간이 너무 늦어질 것 같아서 그냥 TV만 켜놓는다. 옷을 벗고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를 한다. 물에 젖은 몸을 닦아 내고 이부자리에 눕는다. 누워서 오늘 공부한 것들을 한 번 떠올려 본다. 생각이 잘 안난다. 이래서 공부는 조금이라도 젊을 때 해야 하나 보다. 잔다.

덧글

  • 은화령선 2012/03/19 22:00 # 답글

    얃옹.이라닝
  • 슈3花 2012/03/20 00:14 #

    은화령선 // 은화령선님 블로그에 가서 확인하고 왔습니다ㅠ 미리 많이 봐두세요ㅠ
  • acrobat 2012/03/19 22:04 # 답글

    인간의 관음증을 충분히 충족시켜줄 수 있는 명필입니다..하악
  • 슈3花 2012/03/20 00:15 #

    acrobat // 별 것도 아닌 것까지 주저리 주저리 적을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삶이 재미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ㅠ
  • 2012/03/19 22:0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슈3花 2012/03/20 00:16 #

    비공개 // 원치않는 도서관 행이었습니다. 저도 여유가 생기면 조조 영화를 볼 예정이예요. 바쁘네요 에휴 ㅠ
  • 사람해요 2012/03/19 23:49 # 답글

    (펌) 이거 너무나 매력적인걸요ㅋ 그나저나 고추가 크니깤ㅋㅋㅋ여기서 소리내어 웃었음여ㅋ

    그나저나 도서관이라...부럽습니다. 저는 주말마다 여자친구 만나느라 공부할 시간이...
  • 슈3花 2012/03/20 00:18 #

    사람해요 // ㅋ 매력적으로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ㅋ

    공부할 시간이 아까울만큼 뜨겁게 사랑만 하고 싶습니다만... ㅠ 사는 게 왜이렇게 힘이 듭니까 ㅠ
  • volplane 2012/03/23 00:17 # 답글

    정말 주옥같은 글자들...전 학교 도서관 하면 공강때 술 처묵하고 숙직실로 썼던 기억밖에 없는.... .....
    저도 주말에 동네 도서관에서 책좀 빌려 봐야겠습니다...3주전부터 생각하고 있긴 합니다만....
  • 슈3花 2012/03/23 09:08 #

    volplane // ㅋㅋㅋㅋ 숙직실 ㅋㅋ 어쩜 어쩜ㅋㅋㅋ 똑같앗!!! ㅋㅋㅋ 아, 저는 도서관보다는 학회실을 이용하였습니다. 숙취에 쩔어서 학회실에 뻗어 있으면 귀여운 여자 후배들이 들어와서는 '앗! 술냄새! 샹!'하면서 나가곤 했지요 ㅠ

    도서관에 가깝다는 건 참 좋은 것 같아요.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고 또 공부할 수 있으니까요. 물론 저도 생각만 할 뿐 이용률이 낮아서 ㅠ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