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민간인 중에서 제일 예뻤던 그녀 -끝- 잡담


내가 본 민간인 중에서 제일 예뻤던 그녀


"아오~ 오빠! 뭐해? 어제는 잘 들어간 거야?"
"어. 그냥.. 근데 너 오늘도 우리랑 한 잔 하기로 했다며? 오늘도 한 잔 할 거냐?"
"오빠가 먹자고 했거든~ 아닌가? 큽. 그건 상관없고. 어디야?"
"나 어제 먹던 곳에서 먹고 있지."
"아유~ 오빠들은 술집 거기 밖에 몰라? 만날 거기서 술마셔. 알겠어, 먹고 있어. 우리도 밥먹고.. 어제 갔던 ㅇㅈ이랑 같이 갈게~"
"그래, 알겠어. 천천히 와."

전화를 끊었다. 아, 맞다. 어제 후배의 친구 이름이 ㅇㅈ이었지. 나도 참..



전화를 끊고 후배와 후배의 친구인 ㅇㅈ을 기다리면서 친구들과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는 척 했지만 그녀가 신경쓰였다.

'초면인데 머리를 붙잡고 테크노를 추다니.. 내가 미쳤지.. 만나면 뭐라고 인사를 해야 하지? 아.. 어색할 것 같은데.. 혹시 다른 실수를 한 건 아닐까?'

그런데 한 편으로는 이렇게 신경을 쓰고 있는 내가 좀 이상했다.

'내가 왜 이렇게 그녀를 신경쓰는 거지? 설마.. 내가 그녀를......?

"풉!"

웃음이 삐져 나왔다. 친구들은 갑자기 뿜는 나를 보며 '이새끼 또 왜 이지랄이야?'라는 표정으로 바라봤지만 더 묻지 않고 그냥 자기들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여신포스를 풍기는 그녀와 미천하기 그지 없는 찐따인 내가? 말도 안되는.. 겨우 술 한 번 마신 것 가지고 아주 소설을 쓰고 지랄이 났구먼, 어휴 이 한심한 새끼. 김칫국을 들이붓고 있구먼'

한심한 내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고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맴도는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은 여전히 날 혼란스럽게 했다. 머리 속은 복잡했지만 태연한 척 하며 술잔을 기울이고 있으니 얼마 후 후배와 그녀가 도착했다.

후배는 여전히 발랄한 모습으로 술집에 입장하였고, 후배의 친구는 어제와는 좀 다른 모습이었다. 어제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어서 제대로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그날은 달랐다. 4:6정도의 가르마를 탄 단발머리, 검정계열의 블라우스에 살짝 늘어지게 걸친 가디건 그리고 스키니한 진청바지는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 및 매끈한 몸매 라인과 어울리며 자체발광 포스를 보여주었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후배의 인사에 뒤늦게 반응했다.

"어유~ 오빠, 어제 ㅇㅈ에게 한 것 때문에 그래? 내 인사도 제대로 안 받고 뭐하는 거야?!"
"어..어?! 그래. 왔냐? 어제 나 술 많이 먹었지? 어제 노느라고 고생했다. 다 그렇게 노는 거 아니겠냐?"

겸연쩍게 웃으며 후배의 말에 대응은 했지만 내 시선은 여전히 그녀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초반에 말을 꺼내지 못하면 이 자리가 더욱 어색해질 것 같아 그녀를 향해 말을 던졌다.

"아하하, 근데 ㅇㅈ씨 어제 잘 들어가셨어요? 어제 노래방에서 저 노는 거 받아주시기 힘드셨지요? 기분 나쁘셨으면 죄송해요"

그녀의 반응이 궁금하다. 기분이 나빴다고 하면 어떡하지? 그녀는 내 걱정과는 달리 아주 환하게 대답했다.

"아녜요. 근데 오빠, 어제 갑자기 왜 존댓말 쓰세요? 하핫. 어제는 '오빠야, 오빠. 편하게 불러~ 편하게~!'라시면서 친하게 지내자고 하시더니. 크크큭. 오빠도 참~"

마치 만개한 벚꽃이 선선한 봄바람에 흩날리는 듯한 미소를 보여주는 그녀. 내가 반나절 동안 끙끙거렸던 고민이 한 순간에 사라질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였다. 난 그녀의 미소에 푹 빠진 채 대답을 했다.

"아, 제가.. 아니, 내가.. 그랬었나? 아하.. 하.. 어제 과음을 해서.. 아 오빠 오빠. 그래 나 오빠지, 그럼 내가 오빠지. 내가 연식이 더 됐으니까 오빠, 오빠. 아하하 맞네. 아하하"

횡설수설. 얼마 전 면접에 갔다가 멍청한 인사담당자가 실수하는 바람에 전혀 다른 직무에서 면접을 보며 버벅거린 것처럼 생각나는대로 내뱉었다.

우린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다음날이 추석 당일이라 새벽부터 일어나서 차례를 지내야 했으므로 과음은 추석 당일 스케줄을 고려했을 때 절대적으로 치명적인 것이었다. 게다가 전날 술이 만취가 되었으니.. 얼른 술자리를 끝내고 싶었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달리 일찍 끝날 거라고 생각했던 술자리는 다시 무르익기 시작했다.

전날 했던 게임과 같은 게임이었지만 여전히 왁자지껄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난 전날과는 달리 그녀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좀처럼 게임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도 가끔 그녀가 화장실에 가기 위해서 자리를 비울 때는 다른 테이블에서 그녀를 보며 '와~ 저 여자 졸라 예쁘다'라며 수근거리는 남자들을 보면서 역시 그녀는 평균을 훨씬 뛰어넘는 외모의 소유자라고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암튼 어제보다 게임에 집중하지 못한 나는 자꾸 게임에 걸리게 되어 벌칙으로 술을 마시게 되었고 어제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정신줄을 붙잡으려고 했지만 밀려오는 알콜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난 당장의 위험을 벗어나고 술을 좀 깨기 위한 시간을 벌어보고자 엉겁결에 무리한 제안을 하게 되었다.

"야, 여기서 술 그만 먹고, 우리 바닷가.. 바닷가 가서 술 먹자. 조개구이집.. 내가 죽이는 곳 알어!"

시간을 보니 어느새 밤 1시가 넘은 시간. 이쯤되면.. 명절 본래의 취지를 파악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술자리를 파하자고 한 후 집으로 향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날 내 친구 2명을 제외한 나머지 일행들은 내게 제안한 조개구이집으로의 동행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갈 사람들은 가야지. 친구 2명을 택시에 태워 보내고 나니 나와 내 친구, 후배와 후배 친구인 그녀.. 4명이 남았다. 4:2였던 남녀 성비가 2:2로 균형을 이루게 되었다. 우리도 택시를 잡아 한 차에 몰아 탄 후 내가 가자고 소리쳤던 조개구이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택시를 타고 가는 도중 후배가 들뜬 목소리로 떠들었다.

"와~ 오빠 센스있네! 밤바다와 조개구이라!! ㅇㅈ아, 너도 좋지?"
"응. 너무 좋아~ 나 안그래도 바다 보고 싶었는데.. 조개구이도 좋아"

난 단지 술자리를 좀 쉬고 싶었을 뿐인데.. 의도치 않은 반응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20분 정도 택시를 타고 조개구이집으로 이동했다. 막상 도착하니 사람들이 거의 없다. 낮에 친구들과 커피 마시러 왔을 때만 해도 사람들이 북적거렸는데.. 역시.. 추석 바로 전날은 집에 있어야 하는 건데.. 택시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자 바다 특유의 향이 피부로 느껴졌다.

조개구이집 앞에 펼쳐진 바다가 한 눈에 들어왔다. 내가 늘 좋아하는 밤바다. 밤에 컴컴하고 시커먼 바다를 보면 나를 먹어 삼킬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만 그 느낌이 괴기스럽거나 공포스럽지 않았고 오히려 편안함을 느꼈기 때문에 난 예전부터 밤바다를 좋아했다.

날씨는 약간 추웠다. 술을 좀 깨야할 것 같아서 바다를 좀 보다가 들어가자고 했다. 가만히 바다를 보고 있는데 친구놈이 얼마 되지 않아 한마디 한다.

"청승은 시발, 아 추워. ㅇㄹ아(후배이름). 우리 먼저 들어가서 시켜놓고 있자!"
"음.. 그래요. 오빠는 어떡할 거예요? ㅇㅈ, 너는?"

후배가 나와 그녀에게 물었다. 그녀를 보니 그녀는 말없이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난 친구의 말에 이어진 후배의 말에 진짜 청승 떠는 것처럼 보일까봐 그냥 솔직히 술 좀 깨고 들어간다고 했다. 그녀는 원래 그러고 싶었는지, 아니면 내 말을 의식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도 조금 더 있다가 들어가겠다고 했다. 친구와 후배는 조개구이집에 먼저 들어갔고 그녀와 나만 덩그러니 어두운 백사장에 남았다. 언덕이 있는 백사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취기, 파도소리, 고요함. 뭔가 싱숭생숭한 분위기가 조성이 된다. 어색함에 내가 먼저 입을 뗐다.

"흠..후.. 아, 취한다. 넌 좀 괜찮아?"

난 바다를 보던 시선을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참 예쁜 얼굴이다. 봐도 봐도 예쁜 얼굴. 그녀는 나에게 고개를 돌리지 않고 바다를 보며 내 말에 대답을 했다.

"네. 오늘도 재미있었어요? 그쵸?"
"응. 나도 오랜만에 재미있게 술 먹은 것 같다. 근데 아후.. 이렇게 술을 마셔서 내일 어쩌냐~"
"아, 내일.. 오빠는 내일 차례 지내고 성묘 가고 그래요?"
"그럼. 내일 새벽부터 일어나서.. 아으.. 술 그만 마셔야 하는데.. 그런데 넌 내일 괜찮겠냐?"
"아, 저요? 저는 내일 특별한 스케줄 없어요.."

아, 명절이라고 모두 우리 집안 같지는 않겠지. 술이 취하는 바람에 내 입장에서만 이야기를 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질문을 던졌다.

"아, 맞아. 내 친구도 명절에 그냥 가족끼리 밥이나 먹고 그냥 쉰다고 하더라고"
"음.. 그렇죠. 저도 내일 그냥 집에서 밥이나 먹을 것 같아요. 오빠는.. 뭐.. 하하"
"나? 나도 뭐 특별한 거 없어. 오랜만에 가족이랑 친지들이나 만나는 거지 뭐"
"그렇구나~. 난.... 아녜요"
"응? 아까부터 자꾸 말을 하려다가 말어? 뭐 할 말 있는 거 같은데?"
"그냥 이따가 이야기 할 게요. 오빠는 참 재미있는 사람 같아요"
"나? 크크크크크크. 주위에서 술마시면 또라이 된다고 하더라. 어제 많이놀랐지?"
"아뇨. 즐거웠어요. 그런 적이 처음이라.. 즐거웠어요"
"즐겁긴.. 미안하다. 어제 괜히 좀 업되는 바람에..
"그렇게 생각 안하셔도 되요. 진짜 즐거웠는데"
"그랬구나? 그럼.. 다행이고.. 근데 한국에는 완전히 온 거야?"
"아뇨. 언제가게 될지는 몰라요"
"그래? 음.. 좀 불안정한 상태구먼"
"네.. 그래서.. 좀 그래요"

잠시 적막이 흘렀다. 그리고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녀를 바라보던 시선을 다시 바다로 돌린 후 그냥 돌직구를 날렸다.

"근데 너 완전 예뻐. 내가 본 여자 중에서 제일 예쁜 것 같아"
"네? 풉. 아, 뭐예요 갑자기? 흐흐"
"아니, 그냥 그렇다고. 완전 예뻐"
"뭐예요~ 진짜~"
"아니, 그냥.. 예뻐서 그냥 예쁘다고 하는 거야?"
"치.. 나 기분 좋게 해주려고 일부러 거짓말 하는 거지요? 내가 모를 줄 알고?"
"음.. 아닌데? 나 진짜 예뻐서 예쁘다고 한 건데?"
"하하하하핫. 진짜요? 음.. 그럼 나랑 사겨요"
"응? 사귀자고?"
"네. 사겨요. 예쁘다면서? 사귀면 되겠네ㅋ"

내가 그녀와 사귄다고? ㅋㅋㅋㅋㅋㅋㅋ 지나가던 개가 웃겠네. 어차피 실없이 하는 소리일 뿐이다. 그냥 술마시고 내뱉는 분위기 전환용 뜬금없는 소리. 실현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그냥 상황무마용 멘트를 날렸다.

"너 너무 예뻐서 부담되서 못사귄다. 너랑 사귀면 주위 사람들이 내 욕을 얼마나 하겠냐. 욕먹으면서 오래 살고 싶지는 않지롱~"
"음.. 뭐야? 나 거절당한 거야? 크크. 흥. 그렇구나.. 앗~ 추워. 밤에는 좀 추운 것 같아요. ㅇㄹ이랑 오빠 친구 심심하겠다. 우리도 한 잔 더 하러 가요"

그녀는 그제서야 나랑 눈을 마주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내 팔을 낚아채며 팔짱을 끼더니 환하게 웃으며 날 조개구이집으로 이끌었다. 맨정신이라면 그녀가 팔짱을 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지만 술이 오르니 그냥 단순히 식당으로 인도하는 느낌 이상의 다른 감정을 받지는 못했다. 그리고 '어차피 안될 걸..'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으니까.

조개구이집에 들어가니 내 친구와 후배는 뭐가 그리 심각한지 인생에 대하여 논하고 있더라. 방금 전 바닷가에서 그녀와 함께한 대화 중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다시 술을 시켰다. 나와 그녀가 자리에 합석했지만 그들의 논쟁은 끊이질 않았다. 친구와 후배의 논쟁에 거들어서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고, 그녀가 미국에서 지내며 겪었던 이야기들도 듣고, 조개들이 익을 때마다 입을 쩍쩍 벌리는 걸 멍하니 보고 있기도 하고, 조개껍질이 불길에 튀어 올라 깜짝 놀라며 깔깔 거리기도 하고, 뭘 한 것도 없는데 정신없이 시간이 지났다. 추석 연휴 모두를 먹어 삼킬 정도로 술병들이 점점 늘어났다.

의식의 경계가 희미해졌다가, 잠깐 선명해졌다가를 반복하는 상태에 이르러서야 자리가 끝났다. 콜택시를 두 대 불렀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된지는 모르겠는데 내 친구가 후배를 집까지 바래다주겠다며 택시를 타고 먼저 떠났다. 그녀와 나만 남았다.

당시 기억으로는 새벽 4시 정도가 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난 거의 육체와 영혼이 분리될 정도로 피곤했고 그녀도 많이 피곤해보였다. 그녀는 어느새 내 곁에 기대어 있었다. 콜택시가 올 때까지 기다리며 그녀에게 집에 어디냐고 물어봤다. 그녀의 집은 우리 집으로 가는 길에 내려주면 되는 코스였다. 콜택시가 도착했고 아저씨에게 코스대로 이야기를 했다.

"음.. OO..아파트..에서 내려주시고요, 저는 XX...아파트.. 내려주세요"

택시를 타고 이동을 하는데 따뜻한 택시 안이라서 그랬는지 잠이 쏟아졌다. 그녀도 피곤했는지 고개를 숙여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녀의 숨소리가 쌔근쌔근 들려왔다. 그녀의 예쁜 얼굴이 또 보고 싶어졌다.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니 그녀의 머리카락이 그녀의 얼굴을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문득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치우기 위해서 내가 손을 올려 그녀의 얼굴로 가져대자 그녀가 덥썩 내 손을 잡았다. 난 속으로 죄지은 것처럼 하지만 그녀가 느끼지는 못할 정도로 움찔했다. 그러더니 그녀는 덥썩 잡은 내 손을 내리더니 중얼중얼거렸다. 귀를 그녀의 귀에 갖다대며 그녀에게 재차 물었다.

"응? 뭐라고?"
"음.. 오빠.. 바깥에서 바람 좀 쐬고 가요"

난 그녀가 내뱉은 말을 표면적으로 받아드릴 수 밖에 없는 심신 상태였다. 택시 아저씨에게 차를 좀 세워달라고 말씀드렸다.

"아저..씨.. 죄송한데.. 저희 여기.. 여기에서 좀 내릴게요"

어딘지도 모르는 아파트단지에 차가 섰다. 그녀를 부축해서 바깥으로 나왔다. 여전히 새벽공기는 찼다. 술이 좀 깨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너무나 피곤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그녀. 우선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갔다. 이동 중에 교차로를 뽑아 방석을 만들어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정자에 그녀를 잠깐 앉히고 그녀를 내게 기대게 하였다. 그녀는 나에게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오.. 빠.. 추워.. 추워"
"아.. 그래?"

난 자켓을 벗어 그녀의 어깨와 내 어깨에 걸쳐 함께 입었다. 좋은 향기가 났다. '그녀와 함께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아.. 조금 있으면 차례를 지내야 하는데.. 가족들이 다 기다리고 있는데..'라는 생각도 들었다. 여기서 계속 이러고 있을 순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생각도 다 정리하지 못한 채 즉흥적으로 그녀를 다시 부축해서 대로변으로 나왔다. 무의식적으로 주변을 둘러봤는데 모텔은 보이질 않았다.

"ㅇㅈ.. 너.. 어떡할래? 집..에 가야지?"
"나.. 상관 없는데.. 우리.. 집에 가. 집에.."
"응? 집? 너네 집? 푸학.. 내가 너희 집에 어떻게 가?"
"가.. 가면 엄마만 있어... 가..도 돼.. 가"
"아후.... 뭔 개..소리야.."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서있지도 못하는 그녀를 부축한 채로 다시 택시를 잡았다. 택시 아저씨에게 그녀의 집이 있다는 OO아파트로 가달라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녀가 다시 차를 세워달라고 했다. 이유를 묻자 이 번에는 속이 좋지 않다고 하는 게 아닌가. 기사님께 부탁을 드리고 잠깐 차를 세웠다. 그녀에게 괜찮냐고 물어보니 조금 더 있어야겠다고 했다. 택시 아저씨가 한참 기다려야 할 것 같아서 다시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택시를 보냈다. 보도 난간에 걸터 앉아 조금 더 대기하다가 다시 택시를 잡아 탔다.

난 미친듯이 쏟아지는 잠, 계속해서 내용물을 확인하고자 하는 숙취와 사투하기도 힘든데 그녀까지 부축하려니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속세를 버리고 절 간으로 숨어버린 중의 마음을 알 것만 같았다. 모두 버리고 그냥 길바닥이던 어디던 등을 대고 눈만 붙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눈을 깜박인 것 같은데 택시 아저씨가 내 허벅지를 흔들더니 내리라고 한다. 눈이 따갑다. 내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그녀를 깨웠다. 그녀를 보니 정신은 조금 든 것 같았다. 난 따가운 눈을 여전히 찌푸린 채로 그녀에게 물었다.

"음.. 야, 너네 집 여기 맞냐?"
"아.. 네.. 아.. 아 머리.. 속아파.."
"아, 그럼 내리자, 너네 집 몇 동 몇 호냐?"

난 그녀를 부축한 채 실눈을 뜬 상태로 그녀의 아파트 해당 동 앞에 도착했다. 아까보다는 부축이 수월해서 힘이 덜 들었다.

"야, 비밀번호 눌러"
"..치.. 네.. 알겠다고요."

그녀는 갑자기 초인적으로 기력을 회복하는 것 같더니 나의 부축을 벗어나서 내 앞으로 와서 나를 꽈악 안아주는 게 아닌가?

'뭐... 뭐지?'

뭔가 당한 것 같고 왜 나를 안아주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이 힘들고 고된 시련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자 우선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를 꽈악 안아주는 그녀에게 나도 기댄 후 그녀의 등을 토닥토닥 해주었다. 아, 이대로 그녀 품에서 잠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것 같았다.

"어..얼른 비밀번호 쳐 누르고 들어가, 피곤해 죽겠으니까"
"크크. 오빠도 참.. 네~ 다음에 봐요."

그녀는 비밀번호를 누르고 아파트 동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휙 뒤돌아 인사를 하더니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졌다.

'피식'

헛웃음이 나왔다. 난 발걸음을 옮겨 큰 길가로 나갔다. 지나가는 택시를 붙잡았다. 택시 뒷자리에 앉아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40분. 터벅터벅 걸어 겨우 집에 들어가니 부모님께서 "이런 정신나간 놈!"이라며 온갖 꾸지람을 하셨다.

난 아무런 말없이 샤워를 하고 나와 옷을 갈아 입은 후 내 생애 가장 빡셌던 추석을 보냈다.



그리고 추석이 지난 후 3개월 정도 있다가 그 해 크리스마스에 그녀를 또 만나서 조금 뜨거웠던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자꾸 호구인증하는 간지라서 다음에ㅠ

그나저나 지금은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네. 내가 본 민간인 중에서 제일 예뻤던 그녀. 예전 휴대전화에 아직도 간직되어 있는 그녀의 사진.. 간만에 봐야지ㅋ


(펌)

덧글

  • 그리고나 2012/05/29 13:37 # 답글

    으잉 이게 뭡니까 이게 뭐에요!!!!!!!!!!!!!!!!!!
  • 슈3花 2012/05/29 14:59 #

    그리고나 // 여건이 되질 않아요, 늘 ㅠ
  • 그리고나 2012/05/29 15:32 #

    대신 후속편을 기대해봅니다 :)
  • 슈3花 2012/05/29 21:36 #

    그리고나 // 후속편에서는 조금 더 뜨거운ㅋ
  • 0105380 2012/05/29 18:33 # 답글

    손으로 가슴팍 퍽퍽 치면서 읽었어요 ㅋㅋㅋㅋㅋ아 답답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슈3花 2012/05/29 21:37 #

    0105380 // 저란 남자, 답답한 남자ㅠ
  • 2012/05/31 01:4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슈3花 2012/06/06 23:05 #

    비공개 // 저란 남자, 답답한 남자ㅠ(2)

    그러셨군요. 저도 딱히 힘을 드릴만한 피드백을 못드려서 죄송 ㅠ
  • 601n829 2012/06/01 01:09 # 답글

    아...못 믿겠습니다.....ㅜㅜ
  • 슈3花 2012/06/06 23:06 #

    601n829 // 아... 믿어주세요 ㅠㅠ
  • 2012/06/05 01:1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슈3花 2012/06/06 23:07 #

    비공개 // 넵!! 거기서 뵙겠습니다.
  • 제트 리 2012/06/11 22:42 # 답글

    오호!!!!!
  • 슈3花 2012/06/13 11:38 #

    제트 리 // 많이 실망하셨나요?ㅎ
  • 제트 리 2012/06/13 13:13 #

    아뇨 너무 좋아서 그랬어요 ^^
  • 슈3花 2012/06/13 13:44 #

    제트 리 // 앗흥~ 부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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