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 할머니 냉면 잡담


푹푹 찌는 더위. 환장할 것 같았다. 날씨가 더울 때는 얌전히 에어콘 나오는 건물 안에 짱박혀 있는 게 진리겠지만, 나는 더위와 관심 일촌이라서 그런지.. 가만히 있고 싶을 때에는 늘 외출 건수가 생긴다. 그날도 그랬나보다. 더위가 제대로 실력발휘를 하던 그 때 즈음이었을 것이다.

비라도 내리면 구름 뒤에 숨어서 니가 울고 있는 건 아닌지♬....는 개뿔. 그냥 비라도 내렸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청량리역을 지나고 있었다. 청량리역 광장 쪽을 힐끗 보니 푸드코트라고 해서 이것저것 음식 종류들이 나열되어 있는 게시판이 보이더라.

더운 날씨 탓이었는지 그 수많은 메뉴 중에서 갑자기 냉면이 눈에 들어왔다.

'백화점에 들어가서 시원한 바람을 쐬면서 시원한 물냉면이나 먹을까?'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더위를 단순히 시원함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매운 것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나름 변태같은 생각이 번뜩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머리에 떠오른 '할머니 냉면'.

'할머니 냉면'은 예전에 가슴도 크고 얼굴이 참 예뻤던 여직원과 함께 기분 좋게 찾았다가 극강의 매운 맛에 '하악하악'거리고 땀을 뻘뻘 흘리며 거듭 땀을 닦느라 기진맥진한 개추한 모습을 함께 간 여직원에게 적나라하게 보였던 굴욕의 장소. 그 장소를 다시 찾아 가기로 한 것이다. 첫 방문 당시에는 처음 맛보는 매콤함에 깜놀했지만 매콤함과 함께 입 안에서 맴도는 은근한 달콤함, 그 맛을 잊지 못해 그 이후에도 두세 번 정도 더 갔었다.

청량리 롯데백화점에서 청량리 시장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던전 할머니 냉면 입구



오후 1시쯤에 도착을 했는데 점심시간에 도착을 해서 그런지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직장인들 출퇴근 시간만 생각하고 바로 먹겠거니 생각하고 있다가 뒷통수 맞은 기분 ㅠ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니 마침 다 먹고 일어나는 분들이 대기 후 3분 안에 자리를 안내받을 수 있었다.



나의 위대한 그림판 실력



혼자서 가니 합석을 시켜준다. 어차피 나야 냉면 맛을 보기만 하면 되니 자리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만약 내 앞에 어여쁜 여성분이 앉았다면 신경이 좀 쓰였겠지만.. 하긴 어여쁜 여성분이 혼자서 밥 먹으러 올 리 만무하지ㅠ 내 앞에는 나이가 좀 지긋하신 아저씨가 앉으셨는데 이 아저씨도 혼자 오심.

종업원 분께서 주문을 받으려 오시기 전에 메뉴를 한번 훑었다. 어차피 비빔냉면을 먹을 것이었지만 곱배기 가격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눈으로는 메뉴판에 냉면곱배기 가격이 5,000원임을 확인하고 머리로는 내 지갑 속 지폐 현황을 스캔했다. 음식값을 지불하고 커피를 한 잔 마셔도 될 정도는 된다.


참 착한 가격 + 심플한 메뉴구성



종업원 분께서 가위와 얼음육수를 가져다 주시면서 주문을 받으신다. 난 냉면곱배기를 시켰다. 내 앞에 앉은 아저씨는 보통을 시키셨음. 주문을 하고 나서 고개를 돌려 다른 테이블을 보니.. 밑반찬? 그런 거 없다. 기본세팅이 가위와 얼음육수.. 끝ㅋ 물과 뜨끈한 육수는 셀프다. 물은 됐다는 생각이 들어서 뜨끈한 육수를 한 컵 받아 마시면서 냉면을 기다렸다.



좌 뜨끈육수 우 얼음육수



잠시 후 냉면 위에 오이와 무를 채썰어 얹고 그 위에 깨를 뿌린 양념장을 올린 비빔냉면 곱배기가 등장하였다. 인상적이었던 건 계란이 한 개가 통째로!!




비빔냉면 곱배기의 화끈한 자태



새빨간 양념장을 젓가락으로 콕 찍어 살짝 맛보니 매운 맛이 화악 올라온다. 얼굴이 후끈!! 후끈함에 부끄러워져 버린 나의 얼굴을 누가 볼 새라 식초와 겨자를 약간 뿌린 후 대가리를 쳐박고 재빨리 젓가락을 냉면 면발에 꼽아서 재료들과 버무리기 시작했다.



쉐킷 쉐킷



쉐킷을 마친 후 냉면을 먹기 전 계란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예전에 TV에서 '냉면을 먹기 전에 속을 보고 하기 위해서 계란을 미리 먹어야 한다'고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또 미리 계란 안 먹는다고 얼마나 오래 살 지는 모르겠지만 주워들은 풍월이 있기에ㅋ

면발은 탱탱하고 쫄깃한 게 아주 좋았다. 냉면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두꺼운 편이긴 했는데 씹어 넘기느라고 정신이 없어서 면발 두께 따위는 크게 중요치 않았다. 음식 포스팅 스킬이 좀 높다면 면발을 들어 올려서 사진도 찍었겠지만.. 쪼렙이라ㅠ 양은 곱배기가 나에게는 적당했던 것 같다. (사진은 양이 적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아님) 보통은 약간 모자랄 것 같다. 사실 냉면은 보통을 먹으면 배가 잘 차지 않아서 거의 냉면을 먹으러 가면 사리를 추가하거나 곱배기를 먹는 편이라서 그런 듯.

맛은 여전히 매콤하지만 달콤함이 입에 맴도는.. 그런 맛이었다. 솔직히 졸라 맵다. 원래 아무리 매워도 꾹 참고 원래 음식이 세팅된 그 상태로 다 먹는 편인데.. 이 날은 컨디션이 별로 였는지 너무 매웠기 때문에 주문받을 때 세팅되었던 얼음육수를 조금 부어 마셨다. 너무 매워서 먹다가 중간에 얼음육수 통째로 들고 육수를 마시기도 했다. 중간에 뜨거운 육수도 마시기도 했고. 입에서 불이 났다가 꺼졌다가를 반복했고.. 송글송글 맺히는 땀을 넵킨으로 닦아가며 결국 냉면을 모두 비워냈다.


더럽게 잘먹었네



얼얼한 입에 뜨끈한 육수를 홀짝대며 자리에 앉아 정신을 좀 차렸다. 맛있게 맵다. 아니, 맛있게 졸~라 맵다. 뜨거운 육수를 한 컵 다 마신 후 냉수를 한 잔 들이킨 다음에 계산하러 갔다. 계산대에서는 포장을 해갔던 사람이 육수를 더 달라며 다시 왔더라. 바쁜 와중이지만 돈은 드려야겠기에 계산 좀 해달라고 요청을 드리자, 뭐 먹었느냐고 묻는 미소의 할머니ㅋ 이 할머니가 '할머니 냉면'의 할머니이신 듯!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어 드린 후 오천 원짜리 한 장을 거슬러 받고 식당을 나왔다.


계산대 뒷편에 자리한 원산지 정보



할머니 네이트ON도 하시나염ㅋ



식당을 나오니 여전히 찌는듯한 더위가 사람들을 지치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냉면을 먹으면서 땀을 쫙 빼서 그랬는지, 아니면 매운 맛에 이미 짜증과 비슷한 각성효과를 느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짜증은 덜 났던 것 같다. 가격이 저렴해서 그랬나?ㅋ

암튼 오랜만에 매운 맛 제대로 즐기고 왔다. 맛도 있다. 매운 걸 싫어 하는 사람은 양념장을 들어내고 먹으라고 되어 있지만.. 덜어내면 지는 거다. 그냥 먹는거다. 아, 또 먹으러 가고 싶다. 매운 걸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서 같이 갈 사람이 없으니 또 혼자 가야겠지?ㅋ 다음에는 얼음육수 따윈 붓지 않고 먹겠엇!



청량리역 2번 출구에서 나와 빨간 선따라 가는 게 제일 찾기가 쉬운 듯 (A지점)






덧글

  • Ryunan 2012/07/30 23:25 # 답글

    아, 여기 정말 가격대비로 괜찮고 맛있지요. 저한테는 막 죽을정도로 매운맛은 아닌데 적당히 얼얼할 정도의 매운맛이었습니다. 생각난 김에 가보고 싶네요 ㅋ
  • 슈3花 2012/07/31 09:17 #

    Ryunan // 오옷!! 가보셨군요! 저는 컨디션에 따라 다른 것 같긴 한데.. 맵긴 맵습니다 ㅠ 매운 거 잘 드시나봐요. 저도 잘 먹는다고 생각하다가.. 혼쭐 났어요 ㅠ
  • jamie0505 2012/07/31 11:51 # 답글

    그림판실력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기 냉면 급 먹어보고싶네여 :) ㅋ
  • 슈3花 2012/08/02 09:04 #

    jamie0505 // 안매우시다는 분도 계시는데.. 저는 완전 매웠어욧! so hot!!
  • 레드피쉬 2012/08/01 00:55 # 답글

    전 냉면보다 저 따끈한 육수땜에 함흥냉면집 다닌다는ㅎㅎㅎ

    계란은 냉면 먹기전에 먹어야된다는 설도 있지만 저는 계란 노른자가 매운맛을 중화시켜주기때문에 다먹고난 후에 먹어야된다고 생각합니다ㅎㅎ

    님 포스팅은 항상 재밋고 유쾌해요ㅎㅎ
  • 슈3花 2012/08/02 09:23 #

    레드피쉬 // 정말 저 뜨끈한 육수는 먹어도 먹어도 안질리는 것 같아요. 매일 먹고 싶어요. 츄릅츄릅!

    계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군요. 제 친구는 계란 흰자는 먹고 노른자는 냉면에 섞어서 으깨 먹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ㅎ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 2580 2012/08/07 11:33 # 삭제 답글

    저도 가슴크고 이쁜 여직원이랑 여기서 냉면 먹어보고 싶네요 ㅋㅋ
  • 슈3花 2012/08/07 13:08 #

    2580 // 단, 그 여직원 앞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릴 수 있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어욧!
  • volplane 2012/08/10 20:38 # 답글

    다이어트중일땐 슈3화님 블로그 들리면 안되겠어요 ㅠㅠ
  • 슈3花 2012/08/14 22:27 #

    volplane // 다이어트 중이시라면 레드피쉬님의 블로그는 더더욱 들리시면 안됩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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