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서울힙합영화제 후기 잡담

힙합애호가 중 한명으로 도저히 안가고는 못 배긴다. 난 갈 수밖에 없었다.

제1회 서울힙합영화제.

게다가 이번 영화제는 "제1회" 행사이다. 앞으로를 가늠하고 이 행사를 2회, 3회까지 지속하기 위해서는 '1회부터 시끌벅적 해야 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좋은 행사이고 향후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기에 난 서울힙합영화제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자위했다. 우선 재밌어 보이기도 하니까 참석한거지.

1일차

역시나 평일에는 도저히 시간이 나질 않았다. 토요일과 일요일만 관람해도 대부분의 영화를 볼 수 있었기에 주말에 몰빵을 해야만 했다. 평일에 시간을 내지 못하는 개같은 내 현실을 탓하며 졸린 눈을 부비고 아침부터 일어나 영화제가 진행되고 있는 건대입구역으로 향했다. 첫 영화시간은 10시 30분. 건대입구역에 도착해 시간을 보니 9시 30분경이었다. 날씨가 꽤 쌀쌀했기에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몸을 잔뜩 움추린 채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KU시네마테크 전경



입구에서 날 반기고 있던 대형 현수막



너무 일찍 와서 그런지 도착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정면에는 행사 입간판이 설치되어 있었고 좌측에는 DJ부스와 힙합클래식 LP판으로 채워진 사진벽이 설치되어 있었다. 사진벽은 힙합클래식 LP 음반의 음악적 무게감을 견디지 못한 탓인지 몇 장이 떨어져 있었다. 주워가고 싶었지만 나는 그렇게 교육받은 사람이 아니기에 안타까운 마음만 남겨 두고 매표소를 살펴 보니 아직 개시 전이다. 한 번 쭈욱 훑고 행사장을 빠져 나왔다.



만국기 대신 사진기



춥다. 건물 안도 춥고 건물 바깥도 춥다. 과연 내가 가야 할 곳은 어디이며, 어디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철학적 질문..이라기 보다는 본능에 충실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 결과 '거지'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렇다. 나는 춥고 배고픈 것이었다. 거지꼴인 나는 길 건너 편의점에 들려 1,500원짜리 참치반불고기반 김밥을 한 줄을 구매했다. 그것도 카드로. 컵라면도 사먹고 싶었지만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좁기도 하거니와 편의점 알바 여대생이 너무 귀엽고 깜찍했기에 허겁지겁 음식을 쳐먹는 내 추한 뒷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편의점을 나와 길거리에서 김밥을 우적우적 씹어 먹으며 터벅터벅 발걸음을 행사장으로 옮겼다. 영화시작 시간을 맞추기 위해 최대한 시간을 질질 끌면서 이동하는데.. 역시나 쌀쌀하다. 엉덩이라도 붙이고 앉아야 덜 추울 것 같아서 우선 건물으로 들어가 기다리기로 했다.



환.. 환하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건물 입구를 들어서니 아까와는 달리 환하다. 행사장이 활기를 띈다. 조명이 켜져 있고 매표소가 문을 연 탓일 것이다. 그리고 나보다 먼저 와서 쭈구리고... 아니, 기다리고 있는 관객이 한 분 보인다. 두리번 두리번. 매표소로 가서 티켓을 끊었...는데.. 매표를 도와주시는 여성분이 너무 매력적이다. 당장 내 휴대전화 번호를 전달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다시는 이곳을 찾지 못하게 될 것 같다는 검은 기운이 내 몸을 감싼 것은 영화제 동안 black movie를 상영하기 때문만은 아니겠지.



매표소 앞에서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는 티셔츠와 에코백




서울힙합영화제 히트상품 : LP사진벽



행사 입간판과 후원사들



티켓을 끊고 기다리는데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든다. 사람들의 체온으로 로비의 차가운 공기가 따스히 바뀐다. 뭔가 포근함이 밀려 온다. 이 포근함의 50%는 아리따운 매표직원 탓이라 느끼며 힐끗힐끗 쳐다보는데 뭔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죄를 짓는 것 같아서 이내 관두었다. 아침에 상영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게으름과의 맞짱에서 이겼어야 할텐데, 의외로 승리자들이 많았다. 객석이 꽤 많은 사람들로 채워졌고 곧 영화가 시작되었다.



첫빠로 입장하여 사진 촬영을 하려 했으나 ㅠㅠ



[Time Is Illmatic] : Illmatic이라는 음반은 NAS의 전설의 데뷔역작인데 그 음반과 관련된 영화이다. 나스의 유년시절부터 음반이 나오게 되기까지.. 그리고 지금 그가 서 있는 자리는 어디인지에 대해서 본인을 포함한 가족과 형제(=동료&친구)들을 통해 확인한다. 인터넷 웹서핑을 통해서 이 음반에 대해서 알아볼 수도 있겠지만 영상을 통해 그리고 실제 참여한 사람들과 그 음반이 만들어지게 된 배경을 찾아가 이야기를 풀어가니 이해가 더 쉬웠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이 음반이 왜 명반이 될 수 밖에 없는지.. 그리고 이 음반은 정말 real한 음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 영화를 보고 나오니 로비는 더욱 활기를 띈다. 비워져 있던 디제잉 부스에는 주인이 나타나 음악을 틀어주고 있었다. 그루브한 분위기에 영화를 보고 나온 사람들과 영화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어우러져 쿵쿵거리는 드럼과 당당거리는 베이스에 리듬을 타는 장관이 연출되기도 하였다.



로비를 힙합으로 꽉 채워주신 DJ 나으리



이어서 바로 두 번째 영화가 시작되었다.

[Freestyle : The Art Of Rhyme] : 랩의 중요한 부분인 프리스타일과 관련된 내용이다. 프리스타일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과 그 요소별 접근을 통해 진짜 프리스타일은 무엇이고 어떠한 멋과 매력이 있으며 어떤 한계를 보이기도 하는지에 대해서 상세하게 보여준다. 이미 한국에도 충분히 알려진 내용들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를 재확인하는 좋은 시간이었다. 중간중간 보여주는 길거리 프리스타일 래퍼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그래도 슈퍼내츄럴이라는 유명한 프리스타일 래퍼에 대해서도 알게 되어 참 좋았다. 프리스타일은 과거부터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으며, 프리스타일을 통해서 발현되는 예술적 영감과 표출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는 결말이라서 더 좋았다. 과거 프리스타일 래퍼들의 영상을 나도 많이 찾아봤는데 솔직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니 라임정도만 캐치하면서 듣는 정도였는데, 자막과 함께 감상하니 기쁨 두 배. 평일에 시간이 났다면 이 영화를 한 번 더 봤을 것 같다.

두 번째 영화를 보고 식사를 하러 가려 했는데 시간이 마땅치 않다. 40분 정도 시간이 남았는데.. 음식 시키고 받고 먹고 계산하고 하면 시간이 모자랄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바로 다음 영화를 보기로 했다. 아침에 거지처럼 사먹은 김밥 한 줄이 나에게 이리 큰 버팀목이 되어주다니..

[Slam] : 낯선 분야이지만 힙합과 매우 닮아있는 'spoken word poetry'가 영화의 큰 축을 담당한다. 주인공의 좌절과 극복을 위한 과정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인상깊었던 장면을 꼽자면 유리에 촬영팀이 그대로 노출되었던 것ㅋ 그 외에 남자 주인공이 죄를 지었지만 이것이 왜 죄가 되는지에 대해서 여자 주인공과 다투는 부분이다. 그렇게 삶을 살아왔기에 당연시 여겼던 것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게토의 삶이 사회와 결합하면서 발생하게 되는 괴리. 고립된 게토의 삶을 여실히 드러내는 장면이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영상적으로는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었다. 가야할 곳을 찾아 고민하는 남자 주인공에게 하늘(우주)에서 빛을 내려주는 듯한 장면.. 남자 주인공의 이후 삶이 더욱 궁금해지는 장면이었다. 

[Slam GV] : 이번 영화제의 기획자인 클로이와 엠씨메타 그리고 김봉현님이 함께하였다. 처음 클로이님이 등장하며 'spoken word poetry'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죄다 영어라서 메세지를 모두 이해하긴 어려웠지만 그래도 몇몇 단어들 속에서 어떤 맥락인지는 대충 때려잡을 수 있었다. 클로이님의 무대에 이어 토크가 이어졌다. spoken word poetry과 힙합의 차이점과 그 매력, spoken word poetry의 과거와 현재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자리였다. 김봉현님께서 깨알드립으로 학구적일 수 있는 분위기를 유쾌하게 상쇄시켜주었기 때문에 즐겁게 닮은 듯 다른 두 문화에 대해서 기분좋게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에서 나오는 spoken word poetry를 보면서 나는 초창기 한국힙합의 모습을 떠올렸다. 해석에 해석을 해야 비로소 이해가 되는 은유적 표현들. 마치 MC성천의 랩가사들이 저러하지 않았는가? 요즘은 사실적인 현상을 세세하게 표현하는 랩가사들이 많다면 과거에는 조금 더 은유적이었지. 어찌보면 이것도 한국힙합의 흐름 중 하나일 것이고 시간이 흐르면서 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겠지. 그렇게 되면 spoken word poetry와 힙합은 '그루브'라는 점에서 큰 차별점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 토크가 끝난 후 이어서 엠씨메타의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마틴루터킹의 연설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비트와 함께 내뱉는 퍼포먼스였다. 메세지 자체가 워낙 좋긴 하지만 비트와 엠씨메타의 목소리가 굉장히 매력적이라 더 큰 감흥으로 다가왔다.



클로이님의 spoken word poetry



관객을 맞아주시는 김봉현님




깨알드립에 분위기 빵빵




엠씨메타의 간지 퍼포먼스



이번 영화제의 일정을 보면서 계획을 잡을 당시에 이 시간즈음에 식사를 할 생각이었다. 다음 영화까지 약 1시간 20분 정도의 여유가 있었거든. 하.지.만. GV시간이 포함이 안된 거라니.. GV까지 함께 하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훌쩍 지나버렸고, 다음 영화 상영까지 약 40여분 정도의 시간만이 남아 있었다. 문득 떠올렸다. 나의 체중.. 과연 적절한 것인가? 결론은 쉽사리 과체중이라는 쪽으로 매듭지어졌으며 점심은 가뿐히 제끼기로 했다. 집에서 출발 전 '건대입구 맛집'을 검색한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또 다른 DJ



[Style War] : 그래피티와 비보잉에 대한 다큐형식의 영화이다. 그래피티가 80%, 비보잉이 20% 정도로 다루어진 것 같다. 뉴욕에서 그래피티가 한창 흥하던 시기의 모습과 정부규제로 인해 한계에 부딪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피티 아티스트와 어머니 간 의견충돌을 보이는 모습, 특히 아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어머니의 모습은 빵빵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피티를 해야만 하는 아티스트들의 예술적 욕망(이기심)과 그것을 억누르려는 관료들의 대립구도가 인상적이었다. 복잡한 문제이긴 한데, GV를 통해서 생각이 좀 정리가 되긴 했으니.. 아래에서 시부리도록 하고.. 비보잉의 경우 독자적 기술의 창조 그리고 그것에 보태고 보태어 더 멋진 기술로 발전 해나가는 모습들을 보는 것이 재밌었다. 길바닥에서 박스 깔아놓고 춤추던 사람들이 점차 무대로 나아가는 모습을 통해 비보잉의 발전단계를 집약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피티 작품 사진 전시



[Style War GV] : 현재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HONG9님과 클로이님, 김봉현님이 함께 하였다. HONG9님이 생각하는 그래피티의 매력과 한계 등을 이야기하는 솔직한 자리였다. HONG9님께서 '솔직히 그래피티는 양아치문화에서 시작된 것이 맞고, 그걸 부정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역사 왜곡도 하는 마당에 그 문화의 정체성에 대해서 비판의 화살이 오더라도 직시하는 그런 태도. 역시 힙합이다. 그래피티의 시작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체제 안에서는 분명한 범죄행위였기 때문이다. 그 사회체제의 방식이 맞는지 아닌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내가 그래피티를 바라보면서 단지 멋지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생각을 많이 한 적이 있었나 싶긴 한데.. 정리를 좀 해보자면.. 그래피티의 시작은 인간 본성에 기초한 것이고 그것이 발전하여 누군가에게 예술적 범주로 이해될 수 있을 때 그것을 받아드릴 사회적 준비(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존중)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 사회적 준비를 위해 당사자들의 노력이 솔선되어야 한다는 것 등으로 생각이 정리되었다. 뉴욕의 사례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그래피티 문화도 뉴욕과 마찬가지로 막막한 환경속에 놓여질 수 있는.. 그런 아슬아슬한 경계에 서 있는 건 아닌지 생각이 들었다.



Style War GV



뜨거웠던 열기의 행사장을 빠져 나와 휴대전화를 열어 시계를 보니 저녁 7시 정도가 되었던 것 같다. 저녁을 먹으면 딱 좋을 시간이지만 '지금 시간에 건대입구에서 혼자 밥먹는 사람은 나뿐이겠구나'라고 생각하니 밥맛이 뚝 떨어졌다. 찬바람을 쐬며 담배나 한 대 태우면 꿀맛이겠지만 금연을 하고 있는 터라 그마저도 마뜩잖다. 행사장에서 나오고 있는 힙합비트가 아니었다면 난 몸둘 바를 몰랐겠지. 자연스럽게 음악에 맡긴 채 다음 영화를 기다렸다.

[Love Jones] : 앞서 본 영화 [Slam]에서 보여줬던 'spoken word poetry'를 통해서 남녀주인공이 엮이고 또 연결된다. 낄낄거리는 주인공의 친구들이 내 친구들과 부쩍 닮아 있어서 깜짝 놀랐다. 청소년관람불가라서 므흣한 장면이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했으나 생각보다 아름답게(?) 묘사가 되어 아쉬웠던 부분. 나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온 작품은 아니었다. 달달한 로맨스 영화를 한 편 보고 나온 기분.

영화를 다보고 나오니 오후 9시가 훌쩍 지났다. 건대입구에서 밥을 먹고 집으로 복귀하려다가 -식사시간이 얼마나 오래걸릴지 모르겠지만- 열차시간 신경쓰느라 밥을 마음편히 먹지 못할 것 같다는 판단이 들어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아침에 김밥 하나로 밥을 떼웠기 때문인지 속이 쓰렸다. 24시간 운영하는 순댓국집에 들려서 순댓국 하나랑 소주 한 병을 시켜 깨끗하게 비우고 집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2일차

토요일과 일요일 상영작 중 중복되는 영화는 [Style War], 한 작품 뿐이었다. 다행히도 상영시간은 일요일 아침. 따라서 개인적인 모든 일정은 일요일 오전에 처리를 해야겠기에 오전부터 정신이 없었다. 아침끼니도 거르고 지하철을 타고 동분서주하며 개인적인 일정을 끝내고 건대입구에 도착하니 시간은 10시 40분 경. 영화 시작이 12시이니.. 니뽕내뽕에서 시원한 짬뽕으로 속을 해결하려 했으나 11시부터 문을 연단다. 하는 수 없이 주변을 알짱거리다가 니뽕내뽕 정문의 좌측 골목에 위치한 국밥집 중 가운데에 있는 국밥집에 들어갔다. 돼지국밥을 시켰다. 소주도 한 병 먹으려고 했으나 술냄새 풍기면서 영화를 볼 수 없기에 꾹 참았다. 돼지국밥은 건더기가 실하고 국물도 진해서 밥을 다 말아서 엄청 맛있게 한 그릇을 후딱 해치웠다. 맛있게 먹었냐는 아주머님의 말씀에 '엄청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라고 하자 '학생이 배가 고팠나 보네~ 다음에 또 와요~'라고 하더라. '학생'이라니! 내가 동안이라니! 라는 생각도 잠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자 립서비스였음을 깨닫고 말았다.



포포포포스터



행사장에 도착하니 붐붐거리는 비트가 귀를 휘감는다. [Straight Outta Compton]은 우리나라에 대규모 배급사를 통해서 공식적으로 상영된 작품이므로 많은 사람들이 이미 보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과는 달리 꽤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채웠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상영되는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일까? 나도 두 번째로 보는 것이었다. 상영시간이 긴 걸로 알고 있었기에 몸안에 있는 모든 물을 빼내기 위해 화장실을 찾았고.. 소변만 비워냈다.

[Straight Outta Compton] : 힙합역사 중 가장 쎈(?) 그룹인 N.W.A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이다. 멤버 결성부터 데뷔 후 화제를 뿌리며 씬에서 자리잡던 전성기 시절 그리고 해체, 재결합까지.. 그 속에서 벌어지는 멤버간 갈등과 화해 등을 잘 보여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인상깊었던 장면은 역시 뭐니뭐니 해도 짬짬히 보여주는 Dr.Dre의 음악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with Snoop Dogg), 익숙한 샘플 원곡의 등장, 2pac와의 콜라보 장면 등이다. 그리고 가끔씩 깔리는 90년대 미국힙합 황금기 때의 음악을 듣는 재미도 쏠쏠했고. N.W.A는 그들의 삶을 이야기할 뿐이었는데 사회는 그것을 이슈거리로만 삼을 뿐 구체적인 해결책은 내놓지 않는.. 이런 답답한 현실 속에서 활동을 하였기에 그들의 음악과 활동은 더 큰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Dr.Dre가 결점이 없게, 존나 멋지게만 나오는 건 옥의 티라고 생각함ㅋ 결론은 두 번 봐도 재밌다는 것.

거의 두 시간 반 동안 진행된 상영을 마치고 나왔더니 슬슬 관절이 뻑적지근하다. 아마도 [Straight Outta Compton] 탓만은 아니리라. 아마도 전날부터 누적된 것이겠지. 바깥에서 국민체조 2번 동작인 무릎굽혀 펴기 동작을 3회 정도 하였다. 무릎에서 우둑우둑 소리가 나는 것이 몸이 예전같지 않음을 느낀다. 게다가 무릎을 접었다가 펼 때는 '으으윽~'과 같은 신음 소리를 내고야 마는 내 현실. 그렇게 세월의 흐름이 덧없음을 느끼면서 다음 행사를 기다렸다.



[한국힙합 : 비주얼 스토리] 시작 전


[한국힙합 : 비주얼 스토리] : 한국힙합 뮤직비디오를 보여주고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게스트로는 뮤지션 기린, 영상제작자 이제우님, 음악평론가 김봉현님께서 참여하셨다. 듀시스트인 나에게 '굴레를 벗어나'와 '상처' 뮤직비디오를 극장 스크린에서 볼 수 있다는 건 큰 감흥이었다. 모든 부분을 따라 부르며 신나게 즐겼다. 아.. 성재형 보고 싶다. 지금 그가 살아 있다면.. 하아.. 암튼 기린의 'JAM'의 뮤직비디오도 봤는데 굉장히 즐겁게 감상했다. 음악도 굉장히 좋더라. 기린의 모든 음반을 모아볼까 생각이 들었다. 기린의 영상에 대해 김봉현님이 음악과 영상의 괴리에 대해서 질문하고 답을 듣기도 하였는데.. 내가 생각하는 음악과 영상의 괴리는 몰입의 방해가 아닌 + @ 라고 생각을 한다. 음악은 음악 자체로 감상을 하면 되고, 영상은 그 음악과 함께 즐거이 감상하면 되는 것. 몰입의 방해라던가 라는 부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나는 음악은 음악자체로 즐기면 되고 영상은 거기에 추가적인 또다른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다듀의 링마벨도 그렇잖아. 그리고 영상제작자인 이제우님의 힙합뮤직비디오 제작의 특징과 실제 제작 후기 등도 들을 수 있는 유익한 자리였다. 나는 처음 이 공연을 예상했던 게 [한국힙합 : 비주얼 '히'스토리]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스토리'였다. 히스토리라도 좋았을텐데.. 한국힙합 뮤직비디오를 언제 또 이렇게 큰 화면에서 감상해 볼 수 있을까?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무료행사였지만 전혀 무료하지 않았다.


김봉현님의 인사말씀




한국힙합 : 비주얼 스토리


행사를 마치고 나오니 시간이 약 50분 정도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크게 결심했다. '밥 먹으러 가자!' 그렇다. 나는 저녁을 먹었어야만 했다. 전날 배고픔으로 인한 속쓰림을 경험하였기에 뭐든지 속을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재빨리 행사장 건너편 골목에 위치한 중국집으로 가서 고기짬뽕을 시켰다. 시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시계를 계속 보면서 '언제 나오나요?'라고 발정난 개새끼마냥 재촉하는 나에게 어여쁜 여종업원은 '곧 나옵니다'라는 미소로 친절히 응대해주더라. 같은 진상 손님에게 미소를 지어야 한다니.. 서비스직이 이래서 힘들다. 음식이 나온지 5분도 안되는 시간에 그 뜨거운 짬뽕을 국물까지 후딱 해치우고 나가려는데 어여쁜 여종업원이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한덩이 친절히 건내준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뭐 이딴 거지같은 새끼가 다 있어?'라는 표정. 개의치 않는다. 한 입에 아이스크림을 쳐담고 우물거리면서 계산대로 가서 재빨리 계산을 마치고 바깥으로 나왔다. 땀을 뻘뻘 흘리며 바깥의 차가운 공기를 마주하자 초사이어인이 되기 직전처럼 온 몸에서 열기가 서린 김이 올라온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날 이상하게 쳐다본다. 나는 휴대전화 속 시계만 쳐다본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약 10분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다행이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스스로에게 대견스러워하며 더부룩한 속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이어서 보게 될 영화는 [도프]였다. 국내 미개봉작인데 이미 외국에서는 재밌다고 소문이 났나보다. 외국인들이 굉장히 많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거의 매진 직전. 혹은 매진?

[DOPE] : 'DOPE'의 사전적 개념이 설명되면서 영화가 시작된다. 영영사전을 보는 느낌이었다. 게토(잉글우드)에서 살아가는 90년대 힙합애호가(이 녀석들을 마니아라고 하려다가 n.w.a랑 jay-z 언급 드립으로 인해 애호가로 적는다ㅋㅋ)인 청소년들의 좌충우돌 이야기. 이야기 전개라던가 전체 맥락상 굉장히 재미있는 영화였다. 영화에는 아직도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흑인과 출신지에 대한 사회적 편견 등을 유쾌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곳곳에 배치된 자잘한 유머코드에 대해서는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한국인들은)는 잘 따라 웃지 못했다. 반대로 외국인들은 쉼없이 웃음을 터뜨리더라. 반전으로 보여주는 비트코인 시스템에 대해서 나처럼 이해가 떨어지는 사람은 마지막 반전도 제대로 즐기지 못했으리라. 시대적 감각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더욱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 보니 나는 참 뒤쳐진 사람인가보다. 참고로 딕.. 귀엽다.



북적거리는 로비



마지막 상영을 앞두고 나니 뭔가 스스로에게 대견스러워진다. 주말 내내 서울힙합영화제와 함께 한 나.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경건한 마음으로 다음 상영작을 기다렸다.

[Boyz N the Hood] : 가장 몰입되던, 가장 큰 울림으로 다가왔던 작품이었다. 게토에서 벌어지는 비참한 현실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사건사고 현장이 놀이터인 아이들, 며칠 째 치워지지 않는 시체들, 수시로 들리는 총격소리, 게토 안에서 서로 두려움만 가진 채 서로를 죽여야지만 살 수 밖에 없는 세력 다툼의 현실 그리고 그 반복, 방관하는 헬리콥터와 불신으로 접근하는 공권력. 폭주기관차처럼 벼랑 끝을 향해 질주하는 게토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그 게토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도 진솔하게 접근한다.  남자주인공이 미칠 것 같다며 격하게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은 과잉이 아닌 진실함으로 느껴지며 절로 감정이입이 되었다. 안타까운 죽음에 가슴이 미어 오다가 또 위로받는 모습에 같이 눈물을 흘리게 된다(물론 난 울진 않았지만). 비참한 게토의 삶. 하지만 그 곳에서도 사랑과 희망은 어렵지만 꿋꿋하게 피어난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근래에 본 그 어떤 영화보다 단연 최고였다.




Boyz N the Hood GV



[Boyz N the Hood GV] : 씨네21의 주성철 편집장님과 김봉현 평론가님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화에 대해서는 두 분 다 극찬을 하시더라. 역시 좋은 작품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블랙무비 전반에 대한 흐름부터 시작해서 해당 영화에서 인상적이거나 매력적이었던 부분 등을 차근차근 잘 설명해주셨다. 다른 블랙무비 추천작품도 잊지 않으셨고. 주성철 편집장님은 실물이 훨씬 좋더라. 훈남이다. 그리고 목소리도 굉장히 좋았다. 특히 김봉현님의 드립이 포텐터지는 GV였다. '아 마지막에 이러면 안되는데'라고 하시면서도 끊임없이 드립포텐을 터뜨리시는 바람에 굉장히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GV가 끝났다.




말씀중이신 주성철 편집장님



[Boyz N the Hood GV]를 끝으로 제1회 서울힙합영화제가 끝났다.

스스로가 대견스럽다. 대견스로워지더니 결국에는 내 자신이 대견하다. 태어나서 가장 짧은 시간 가장 많은 영화를 본 경험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영화를 보고 많은 생각을 해본 건 실로 오랜만인 것 같다. 그 생각들이라는 것이 내가 참 좋아하고 사랑하는 힙합이라는 범주 안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 생각들이 긍정적 에너지로 해석되어 내 안에 자리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힙합의 가사 속에서만 막연하게 떠올렸던 게토의 삶이 보다 명확해졌고, 힙합에 대한 편견에 대해서 조금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었으며, 랩이 가진 매력이 더 크게 다가와 힙합을 더욱 더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다.



나의 첫날밤 사진



사실 다녀와서 하는 말인데 건대 축산병동(?) 괴질이 발생하는 바람에 티켓을 예매해 놓고도 갈까 말까 고민을 했었다. 힙합애호가인 나도 이런 고민이 되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땠을까? 아마도 더 많은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한 큰 이유 중 하나일 것으로 생각된다.

너무 즐겁게 이번 행사를 즐겼기에 서울힙합영화제 2회가 개최된다면 그때에는 내가 어떤 힘이 되어줄 수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보았지만 나같은 잉여는 아무 도움도 안되는 병신이겠지ㅠㅠ 그냥 그때에도 즐겁게 참석하여 즐길 수 있길 바랄 뿐. 2회에도 기쁜 마음으로 참석할테니 받아 달라. 행색이 추레하다고 문전박대는 하지 말아 달라. 마음만은 Jay-Z다.

아,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정말 소중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덧글

  • 2015/11/06 12:08 # 삭제 답글

    첫 DJ 님은 노도 님 아니신가요 ㅋㅋ
    저는 대부분 봤던 거라 도프만 보았는데 고생하셨습니다.

    2회가 열린다면 아마 덕분이겠죠! 주말엔 사람이 많았는지 궁금하네요.
  • 슈3花 2015/11/06 13:30 #

    귀 // 오랜만이시네요. ^^ 찾아보니 노도님 맞으신 것 같더라고요.

    역시나 귀님도 가셨었군요. 같이 즐겼으면 더 좋았을텐데 아쉽네요. 주말에 막 사람이 미어터지는 정도는 아니었고요. 도프는 사람이 많았던 것 같네요. 음.. 은근히 쭈욱 사람들이 계속 찾아오고 기분좋게 즐기고 그랬던 것 같네요~
  • 2015/12/31 19:2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6/01/05 09:1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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